김남주는 누구인가? 김남주는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았을까? 김남주가 우리 시대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
나는 그런 궁금증을 안고 삼산면 봉학리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의 생가에서 멀리 바라다보이는 두륜산을 보면서 호오손의 큰 바위 얼굴을 떠올렸다. 어쩌면 김남주도 큰 바위 얼굴인지도 모른다.
시인이 49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은 안타깝지만, 그는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시인이 만난 우정과 사랑의 이야기와 함께.
김남주는 해남중학교에서 평생을 함께 할 죽마고우를 만난다. 친구의 이름은 이강. 둘은 역사와 현실문제를 두고 많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우정이 점점 깊어졌다.
3학년 때에는 삼산면에서 통학하던 김남주가 이강의 자취방으로 옮겨가 함께 생활하기도 한다. 둘은 고등학생 시절에 이어 대학교에서도 만난다.
김남주는 영문과, 이강은 법학과 학생이었다. 두 친구는 장기 독재의 발판을 다진 박정희의 시월유신에 크게 분노하고 저항하기로 결심한다. 전국 최초로 반유신 반독재의 기치를 올린 지하신문 <함성>, <고발>지는 이렇게해서 탄생한다.
박정희 타도를 외치는 신문이 광주시내 학교에 뿌려진다. 막걸리를 마시다가 술주정만 해도 잡혀가던 시절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터진 것이다.
이 사건으로 김남주와 이강의 남은 삶이 결정된다.
15년 형을 선고받고 광주 교도소에 갇힌 김남주. 어느 날 약혼녀가 찾아온다.
사회개혁과 민족문제에 골몰해온 그에게 애인이 있을 리 없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녀의 이름은 박광숙. 안면은 있었지만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바른 일을 하고서도 갇혀있는 김남주 선생님을 옥바라지해주고 싶었어요. 가족이 아니면 면회가 안 된다길래 약혼녀가 되기로 했지요.”
그녀는 김남주의 간곡한 거절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옥바라지는 김남주가 출옥하기까지 10년 가까이 이어졌다. 마침내 두 사람은 결혼했다.
(39회: 디자이너 이광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