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윤선도와 이의신이 자주 어울리던 시절의 이야기다. 고산이 가만히 보니, 이의신에게 이상한 습관이 있었다. 어디를 가는지 말을 타고 외출을 하는 날이 많았던 것이다. 어디를 가느냐 물어도 의신은 웃기만 할 뿐이라, 고산은 조바심이 났다.
그러던 어느 봄날 고산이 이의신을 집으로 초대했다.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술도 제일 좋은 것으로 내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의신에게 고산은 술을 따르면서 말했다.
“벚꽃은 날리고 봄비는 내리고. 오늘 같은 날 술을 안 마시면 언제 마시냐?” 그러면서도 자신은 술을 아주 천천히 마셨다. 벚꽃에 취한 의신은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의신은 까맣게 몰랐지만 이날의 술자리는 의신이 다니는 곳이 궁금했던 고산이 계획적으로 마련한 터였다. 의신이 취해서 잠이 들자 고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산은 마구간으로 가서 의신의 말에 올라탔다. 미리 준비해 둔 망치와 써금써금한 말뚝도 챙겼다.
고산을 등에 태운 말이 달리기 시작했다. 말이 멈춘 곳은 현산면 구시리 금쇄동. 말은 의신이 자주 찾았던 곳으로 고산을 데려간 것이었다. 그곳은 한눈에 보아도 명당 중 명당이었다.
고산은 가져간 말뚝을 명당자리에 박아두고 돌아왔다.
며칠 뒤 고산이 의신을 찾았다. “내가 묻힐 명당 터를 보아두었는디 나랑 같이 가볼랑가?” 의신은 고산을 따라나섰다. 금쇄동에 이르렀을 때 의신의 눈에 호롱불이 켜졌다. 터가 어떠냐고 고산이 물어도 의신은 먼 산만 바라볼 뿐이었다. 고산이 흙이 묻은 말뚝을 꺼내왔을 때에야 의신이 입을 열었다. “실은 이 자리는 내가 전부터 보아 둔 곳이네. 그렇지만 할 수 없지. 땅 임자는 따로 있었어…”하면서 하하하, 크게 웃었다.
의신은 고산이 꾀를 내서 금쇄동터를 빼앗은 사실을 눈치챘을까? 고산은 의신에게 사실을 고백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겠는가? 아니면 고산이 묻힌 금쇄동 터가 워낙에 명당이다 보니 고산보다 한 수 위인 이의신에게 빼앗은 터일지도 모른다는 전설이 생겨났을 수도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