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은/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우리가 ‘풀잎’ 하고 그를 부를 때에는/우리들의 입 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은/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그러나 풀잎은/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우리가 ‘풀잎’, ‘풀잎’ 하고 자꾸 부르면,/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푸른 풀잎이 돼 버리거든요.
박성룡 시인의 시 <풀잎> 전문이다. 봄이면 더 생각나는 시다. 김수영, 조지훈, 나태주 시인도 풀잎을 노래한 적이 있지만 나는 박성룡 시인이 풀잎을 가장 따뜻한 눈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풀잎을 풀잎이라고 불러주는 마음. 아기처럼 몸을 흔들고 통통거리는 풀잎이라니, 멋지지 않은가? 
손자가 한글을 익히면 큰 소리로 읽어보라고 할 참이다. 또박또박 아주 천천히.
<새소리 사람소리>도 좋다. 사람들 목소리보다/산새소리를 더 많이 듣고 사는/요즘이지만//진정 그리운 것은/사람의 목소리이다.//어찌어찌 하다 보니/사람이 사람을 멀리하고 살아가는/시대가 되긴 했지만//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대로/허튼 소리는 허튼 소리대로,//진정 그리운 것은/사람들 목소리이다./산새소리는 들을수록/귀가 맑아지지만//사람들 목소리는 들을수록/가슴 뻑뻑해진다. 
시를 읽으면서 성북동 비둘기를 떠올렸는데, 성큼성큼 다가와 손을 내미는 시인의 모습이 겹친다. 시인의 손은  따뜻할 것이다.
시인은 1930년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에서 태어났다. 여섯살 때 광주로 이사해 광주서중, 광주고등학교를 나왔다. 
시인은 전통적인 미의식과 자연의 질서를 추구하는 시를 썼다는 평가를 받는다.「고향은 땅끝」등 7권의 시집을 남긴 시인은 2002년 7월27일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수원에서 영면을 취하고 있다. 
해남 땅끝순례문학관에 가면 <풀잎>의 시비와 함께 시인과 관련된 자료를 볼 수 있다. <풀잎>이나 <새소리 사람소리>같은 시는 해남터미널이나 해남군청 청사에 게시해 해남을 찾는 이들에게 소개하면 좋겠다. 오가는 사람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운 시어를 읊조리는 해남. 해남은 시인의 고장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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