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7년 겨울, 대흥사 스님들이 탄 배가 일본으로 떠내려갔다. 천불을 싣고 오다가 표류한 것이다. 《일본표해록》은 그 배에 타고 있던 풍계현정 스님이 쓴 책이다. 책은 천불을 만들게 된 과정과 일본에서 보낸 8개월을 담고 있다. 일본에 다녀온 대둔사(대흥사) 스님들의 명단도 실려있다.
일본인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인용했지만 어렵지 않게 한국어 이름을 짐작할 수 있다. 치이루(지일), 헨세쿠(현석), 도쿠헤(덕해), 츈이루(춘일), 구무케이(금계), 후에쿠(후액), 하키루(학일), 윤사무(윤삼), 세쿠세무(석샘), 도쿠칸(덕환), 세쿠수쿠(석숙), 사쿠에(석애), 치산(치산), 세쿠오쿠(석옥), 만오쿠(만옥) 이상 15명. 책에는 스님이 일본에서 보고들은 이야기도 실려있다.
《일본표해록, 2010, 동국대학교》에서 몇 가지 이야기를 가져왔다.▲대마도 사람들은 대부분 조선말을 잘했다. 자신들도 조선인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도착한 후에 동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대마도는 본래 우리 땅이며 그 사람들도 우리나라의 자손이라고 했다.
▲모든 장례는 매장할 뿐 묏자리를 살피지 않았다. 사찰 근처의 들판에 매장하였는데 작은 돌 하나를 세우고 성명을 적어서 표시했다. 신주는 그 사찰에 두고 제사는 묘에서만 지냈다. ▲집집마다 작은 불상을 모시고 부처님께 제를 올린다. 귀족들의 아들 중에 아우는 모두 스님이 된다. 승려들은 법화경만을 외울 뿐, 다른 경전은 모두 이해하지 못했다. 또 참선도 알지 못했다.
▲지나는 길에 학교를 보지 못했다. 대소 관리가 모두 세습됐고, 또 과거가 없어서 학문으로 출세하는 이가 없었다. 학문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인 것 같았다. ▲나가사키 사람들은 항상 말하기를, “천하의 모든 나라 중에서 금은이 많기로는 일본보다 많은 곳이 없다”고 했다. 황금창고와 백금창고의 넓이를 기준으로 부자 여부를 판단했다.
▲일본에는 도적도라는 섬이 있다. 어떤 사람이 도둑질을 하다가 세 번째에 적발되면 그 처자와 권속까지 그 섬에 유배 보내고 배로 왕래하지 못하도록 한다. ▲풍속이 매우 정결해 방이나 정원에는 티끌 하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매일 목욕을 하는데 목욕물 장수도 있었다. ▲일본 여자가 조선 사람과 정을 통해 아이를 낳으면 그 나라에서 지극히 귀중하게 여긴다. 관청에 신고하면 관에서 돈을 준다고 한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