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근/작가, 성평등과 자녀교육 강사
오성근/작가, 성평등과 자녀교육 강사

 

 날마다 동이 트기 전에 잠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눈곱만 떼고, 커피를 내려서 월성천으로 나갑니다. 물소리를 들으면서 새벽 별과 달구경을 하면서 커피를 마십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입니다.
오래전에 써두었던 글들을 하나씩 끄집어냅니다. 원석처럼 투박한 글을 곱씹어 읽으면서 다듬습니다. 매듭짓고 싶은 글은 매일같이 반복해서 수정합니다. ‘이 정도면 되었다’ 싶다가도 며칠 뒤에 보면 탐탁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탈고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몇 시간 일한 뒤에 밥을 먹고, 텃밭과 마당의 풀을 뽑습니다. 잠깐 낮잠을 자고, 일하다가 해거름에 또 풀을 뽑습니다. 땀 흘려 풀을 뽑으면 잠이 깨고, 머리도 맑아집니다. 마을 산책을 하고, 잠깐씩 기타연습도 합니다.
작년 시월에 집을 처음 보았을 땐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조릿대만 한 굵기에 성인 키 높이의 풀이 마당에 빽빽했지요. 그걸 베어내고 겨울을 났습니다. 날이 풀리고, 바닷바람이 불어오자 맨땅에서 흙먼지가 몰려왔습니다. 이걸 어쩌면 좋을까 궁리하는데 마당 가장자리에 약간의 잔디가 보였습니다.
잔디를 살리기로 하고, 땅이 바짝 마르면 넉넉하게 물을 주었습니다. 잔디만 자라는 게 아니라 온갖 풀들이 자랍니다. 서너 달 동안 신경을 썼더니 마당이 제법 푸르러졌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생활이 무척 만족스럽고, 행복합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며 어느 틀에도 얽매이지 않습니다. 원하던 일을 자유롭게 하니까 조금씩 성과도 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쉬움이 하나 남습니다. 앞으로 계속 해남에 살 건지를 묻는 말에는 난처해집니다. 현재는 해남군민이지만 시한부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작년 8월부터 석 달 동안 ‘해남에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작은 학교 살리기’로 운영했던 집에 세를 얻었습니다. 해남에 산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가고, 내년 가을이면 계약이 종료됩니다. 그동안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으나 아직도 원하는 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딸은 과자를 굽고, 나는 커피를 볶는 카페가 목표입니다. 그래서 휴게음식점을 열 수 있는 창고 딸린 시골집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집을 찾아서 가격을 물어보면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시하거나 뒤로 한 발짝 물러서기 일쑤였습니다. 가벼운 주머니가 계약을 어렵게 합니다. 
귀농·귀촌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실제로 살려는 이들에게는 무관심합니다. ‘무얼 하면서 살 건지, 어떤 용도의 집을, 어느 가격선에서 구입하고 싶은지?’ 누구도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의 성패가 주택의 매수 여부에 달려있는데도 그렇습니다. 
목적에 맞게 수리하려면 늦어도 내년 봄까지는 집을 구해야 합니다. 이웃들과 어울려서 오순도순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마을 행사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여하고 있지요. 그런데 혼자 지내는 걸 뻔히 알면서도 밥이나 먹고 사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들여다보는 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차랑 커피를 대접하겠습니다.”
도움을 줄 만한 마을 분들을 여러 번 초대했습니다. 무연고지에서 친분을 쌓고, 또 필요한 도움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 바쁘다는 말만 합니다. 그렇게 몇 번을 거절당한 뒤로는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더 이상 그 말을 하지 못합니다.
나는 지금처럼 지내다가 내년 가을에 돌아가도 괜찮습니다. 작업실을 얻어서 2년 동안 일하다가 떠난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지자체는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고, 마을에서도 좋은 말이 나올 리 없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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