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는 것이 흠 되지 않은 세상 바라


장애인들의 대모가 돼 11년째 근무하고 있는 박경단(39)씨는 오늘의 해남장애인복지관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지난 97년 10월 전국 군단위 중 최초로 문을 연 해남군장애인종합복지관은 당시만도 장애들에게 전문교육을 실시해줄 인력이 없었다.
전대 수학과를 졸업한 박 씨는 장애인들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살고 싶어 특수교육대학원 과정을 마친 후 1999년 해남장애인복지관과 인연을 맺었다.
10여년 동안 박 씨는 장애아 치료를 맡고 있다. 입사 당시에는 해남 뿐 아니라 강진, 진도, 완도 등 인근 지역도 장애아를 위한 특수교사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그녀는 보육시설종사자워크숍을 개최해 장애아 교육에 대한 사회적 기반을 다져나갔다. 인근 지역의 장애아동에 대한 실태조사도 실시했다. 그 결과 경제적 여건이 좋은 가정은 특수교육을 위해 대도시로 이주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농촌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 아이들만 남아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방문교육을 실시했다. 읍으로 나올 수 없는 먼 면지역까지 찾아다녀야 하는 고된 일이었다.  
처음엔 특수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치료 위주의 교육을 진행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진정 장애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와 소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장애아에 대한 특수교육 수준을 넘어 사회의 공동체 일원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요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것에 이르게 된 것이다.
장애인들은 자신의 문제에 집착해 사회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잊기 쉽다고 한다. 박 씨는 이런 점들을 치유해보고자 장애인들과 함께 금강산 관광을 다녀왔다. 장애를 가졌어도 민족구성원이라는 점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였다. 비룡폭포까지 장애아들을 업고 올랐지만 힘든 줄을 몰랐다고 한다. 관광이 끝나고 나면 민족 통일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 사람의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다시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박 씨는 사회 또한 전통적인 공동체 의식이 살아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는 부족한 것이, 남과 다르다는 것이 흠이 되지 않고, 남는 쪽에서 채워주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역 통합도 꾀하고 있다. 사회 구성원 모두로부터 친근한 장애인복지관을 만들어갈 계획이란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조성 되면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들도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장애인과 살아온 10여년,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기에 그녀는 장애인복지관을 떠나지 못한다. 그들이 있기에 자신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항상 느끼기 때문이다.
박 씨는 정작 자식 교육은 자신이 없다고 말한다. 딸 인아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건강하게 자라주길 바랄 뿐이란다.
                            박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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