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계획에서부터 진행까지 일꾼 중 일꾼
10년 후 해남새마을운동 50년사 발간 꿈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70년대 마을 방송을 통해 흘러나왔던 새마을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새마을운동 해남군지회의 부흥을 이끌고 있는 사무국장 이재철(44)씨는 2001년 공채로 입사해 9년 6개월째 이곳서 근무하고 있다.
황산 징의리가 고향인 이 씨는 70년대 새마을운동을 통해 섬이었던 고향에 연륙교가 놓이고 마을길 포장과 지붕개량 등으로 마을이 변모하는 것을 보며 자랐다. 이 씨는 이런 인연이 자연스럽게 새마을운동 해남군지회와 이어져 천직이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씨는 7~80년대의 새마을운동에 대해 정권의 시녀 내지 정권연장의 도구로 이용됐다는 부정적인 면과 절대적인 빈곤을 벗어나게 한 국민의식개혁운동이었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90년대 새마을운동의 성격이 민간주도의 지역공동체운동으로 탈바꿈해 가고 있음도 말했다.  
새마을지회에서 이 씨의 역할은 끝이 없다. 이주여성관련 사업을 4년째 추진하고 있으며, 남은음식물 제로화 실천운동, 헌옷모으기 경진대회, 샛강 살리기운동, 훈훈한 지역만들기, 녹색나눔장터, 사랑의 김장담그기 등이 모두 그의 손에 의해 이뤄진다. 기획에서부터 재정확보방안까지 그야말로 만능 역할을 해야 한다.  
이 씨는 첫 봉사현장 출장을 잊지 못한다. 마을 부녀회원과 함께 찾았던 송지의 한 마을은 온통 악취가 진동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강아지, 땟국에 절은 초등학생 아이 둘, 이러한 광경은 21세기의 모습이 아니었다. 성심껏 봉사하는 부녀회원들을 보면서 이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뭉클함과 열심히 활동해야겠다는 당위성, 그리고 세상에서 소외된 이웃들을 새마을에서 관리해야겠다는 열정이 솟아났다. 그가 새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마을 맨이 돼 버린 이 씨는 대학원 진학을 계획하고 있다. 전문성을 갖춘 봉사자로 거듭 태어나고 싶어서이다.
이 씨는 새마을 운동이 한국을 넘어 동남아시아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회 차원에서 한국국제협력단의 지원을 받아 아시아 최빈국인 캄보디아와 라오스, 네팔에 새마을운동을 전파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한바 있다며 해남군에서는 이주여성 친정 집 지어주는 일을 추진 할 계획이란다.
올해 말 1채를 시작으로 점차 늘려나갈 계획인데 이 사업은 이주여성이 안정적인 한국생활을 영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마을운동 조직에 젊은 피를 수혈하기 위해 미래지도자를 대상으로 리더십 교육과 함께 SMU청소년봉사대를 조직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 씨는 새마을지도자들이 쌓아올린 업적을 집대성할 해남군 새마을운동 50년사를 10년 후에 발간할 포부도 밝혔다.

박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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