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내 단꿈을 방해하는 웃지못할 추억들이 장날이면 생각나게 합니다. 우리 고장의 장은 1일과 6일로 5일장이 열립니다. 아마도 제가 서너 살 때의 기억으로 생각됩니다.
“경이네야! 경이네 자냐? 니 피곤해서 못 일어나지야? 더 자거라 살살 영감하구 가 볼란다. 아따 검나 춥다잉?”
작은집 작은할머니의 애타는 외침이지만 어머니께서는 투덜투덜하시며 이부자리에서 몸부림치십니다.
“어이구, 짜증난 거. 깨우실라면서 꼭 저러신당께. 자라는 거여, 일어나라는 거여.” 못내 못마땅하시면서도 단잠을 깨뜨리려고 고생하십니다. “예, 나가요. 잠시만요.” 그 덕분에 오늘은 저도 눈을 떴습니다. “엄마! 나도. 나도 갈래.” “아빠랑 더 자. 지금 엄청 추워. 안 돼.” 난 악을 쓰면 웁니다. “엄마랑 갈거야. 싫어, 싫어.” 고집을 부리며 우는 소리에 아빠까지 눈을 뜨시며 한 말씀하십니다. “데리고 가소. 시끄럽구만.” 5월이지만 새벽바람은 처량하리만큼 차갑기만 합니다.
작은할머니께서는 박스며 보자기에다 장에 내다 팔 물건들을 담으셨습니다. 차에 가득 싣고서 우리 가족은 장에 나갑니다. 그 때 시간을 지금 더듬어보면 4시나 된 듯 싶어요. 지금이야 거의 자리가 정해져 있고, 재래시장도 다시 깨끗이 지어졌지만 몇 년 전만해도 먼저 좋은 자리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애가 타시는 것일 겁니다. 자리를 잡고 취나물이며 도라지며, 앵두며,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 생각하면 집에서 흔히 보는 할머니의 보물들이셨습니다. 따뜻한 물로 속을 달래며 날이 밝아지기를 기다리면 여기저기 상인들이 모여듭니다.
작은할머니의 오늘 장판은 대박입니다. 마지막 물건을 덤으로 얹어 주시며 환하게 웃으시며 허리를 펴십니다. “아이구야, 뻗치다. 얼렁 장 보고 가자잉.”
장짐을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정리하시면 저는 그 때부터 신이 납니다. 제가 사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할머니께서 다 사주십니다. 어물전의 퀘퀘한 냄새도, 구수한 통닭 냄새도, 따끈따끈한 풀빵도 장날이면 싫지 않습니다.
지금은 까칠까칠한 손끝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져 주시던 작은할머니는 안계시지만 장날의 추억은 나의 가슴속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가끔씩 장날이면 장을 보러 가시면서 저를 데리고 가십니다. 말씀은 안 하시지만 저와 함께 그 때의 추억들을 나누고 싶으신 것을 저는 어머니의 눈빛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막내고모랑 작은엄마는 E마트나 대형마트를 좋아하시지만 저와 엄마는 재래시장의 장날이 기다려집니다. 작은할머니의 향내와 시장 사람들의 시끌벅적하고 시장사람들의 냄새가 저는 왠지 좋습니다. 생각이 다 나지는 않지만 작은할머니와의 장보기에 흠뻑 빠져있었나 봐요.
오늘도 어머니께서는 한 할머니 앞에서 고추를 사시며 덤을 요구하시면서 조르십니다. 그렇지만 저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왠지 자랑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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