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산에서 뗄감 일 지금은 사찰청소
오늘도 홀로 고개 넘으며 부처님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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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한 50여년 세월동안 두륜산 오도재를 넘어 대흥사로 출근하는 사람.
현산면 덕흥리에 살고 있는 정두봉(72) 처사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오도재를 넘나들며 출퇴근한다. 소요시간은 3~40분, 차로 빙 돌아오는 시간이나 별 차이가 없다.
대흥사 터줏대감으로 통하는 정 처사는 대흥사 역사의 산 증인이다. 민족의 수난기를 거치면서 대흥사의 부속 암자였던 만일암과 남암은 그가 대흥사에 들어오던 무렵 없어졌고, 일제강점기 때 의병활동의 근거지였던 심적암 때문에 대흥사가 일제에 의해 탄압을 받았던 적도 있었다.
한때는 현산 주민들의 길이었던 오도재는 이젠 정 처사만이 혼자 넘나드는 고개가 됐다.
그야말로 그만을 위한 길인 셈이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대흥사서 잘 법도 하지만 정 처사는 하루도 빠짐없이 출퇴근을 고집한다. 눈이 어두운 아내가 집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할 때부터 한 쪽 눈이 성하지 않았던 아내가 몇 년 전부터 나머지 눈마저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는 아내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눈 내리는 어둔 길도 마다않고 오도재를 넘는다.
아무도 다니지 않아 잊혀진 고개인 오도재는 정 처사에겐 삶의 길이요 사랑의 길이다.
“대흥사는 제 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못난 저를 거둬준 것만도 고맙지요.”
하도 오래된 일이라 자신도 몇 년을 근무했는지 모르겠다는 정 처사는 대흥사에 들어왔던 때가 20대 초반이라 50여년쯤 됐을 거란다.
민족의 수난기를 거치면서 학교라고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정 처사는 대흥사에 들어오기 전까지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다.
경제적인 기반도 없고 배운 것도 없었던 정 처사는 부처님께 자신을 의탁하기로 했다.
대흥사에 들어와 맡았던 일은 부목(負木. 절에서 땔감을 마련하는 소임)이었다.
하루 종일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대흥사 일대 산속을 다람쥐처럼 오르내렸다.
대흥사 그 많은 건물과 방에 나무를 공급해야 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정 처사의 수고로 대흥사는 안온한 겨울을 맞이할 수 있었다. 지금은 보일러나 온풍기가 정 처사의 일을 대신하고 있다.
대신 그가 맡은 일은 화장실과 도량 청소이다. 50여년을 자신의 몸을 공양하며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해 왔다.
눈이 덮인 겨울 산사를 따뜻하게 데워왔던 정 처사에게 대흥사측도 화답해 따뜻한 배려를 해주고 있다.
나이가 든 그가 예전처럼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소일거리로 청소를 맡긴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청춘을 대흥사에서 불살랐던 그에게 부처님의 자비정신이 함께 한 결과다.
50여년을 대흥사와 함께 해 온 정 처사, 두륜산 정상의 와불이 고개를 돌려 온화한 미소를 그에게 보낸다.
                                 박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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