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히 흐르는 물 따라 나도 흘러가고
굴곡진 인간의 삶도 일순 평온해진다


서리 맞은 단풍이 3월의 꽃보다 더 붉다고 했던가. 늦가을 오후 온 산을 울긋불긋 수놓던  나뭇잎들이 신열을 앓다가 하나 둘 속절없이 타들어간다. 고현천에 물이랑을 만든 바람이 슬며시 잎을 건드린다. 비쩍 야윈 이파리가 그네를 타고 수면에 내려앉는다.
둑방에 무더기 무더기로 꽃을 피운 흰 억새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편으로 기운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시다. 하늘가에 떠가는 흰 구름과 하나가 되고 싶은지 연신 온몸을 흔들어댄다. 주변을 돌아보면 모두 바스락 소리가 날 정도로 메말랐다. 산그늘 드리운 물가에 앉는다. 잔돌을 타고 넘는 물위에 햇빛이 차갑게 빛난다.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이 목덜미로 내려앉아 아래로 아래로만 움츠리게 만든다.  
구시저수지에서 흘러내린 고현천은 신방리를 거쳐 두모리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다. 현산 고현에서 한우를 기르고 있는 최창탁씨는 마음이 허해질 때면 이곳 고현천을 찾는다. 낚싯대 하나 물속에 드리우고 앉으면 어깨를 짓누르던 일상은 모두 유유히 흐르는 물을 따라 흘러가고, 고기야 잡히든지 말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단다. 깊으면 깊은대로 높으면 높은대로 평등하게 채우고 가는 물을 바라보면 굴곡진 인간의 삶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저렇게 평화로울 수 있다는 깨달음이 밀려온단다.
최창탁씨는 주로 여름 한철에 짬짬이 이곳에서 보낸다고 한다. 선천적으로 사람 모이는 곳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한적한 곳을 찾다보니 이곳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가장 무더운 오후 1시~3시 사이에 이곳에 오면 일찍 내린 산그늘 덕에 시원하게 여름을 보낼 수 있다는데 4시가 넘어지면 오히려 추위를 느낄 정도라고 한다.
욕심 없이 달랑 낚싯대 하나 드리우지만 구시저수지를 넘어온 붕어와 잉어가 무념의 세계에 파고든단다. 마음을 비우고 싶으면 현산 학의리 앞 고현천으로 가보자.  
박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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