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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처럼 흔들리다보면 어느새 안정이
황금빛 잔치가 끝난 들녘엔 바래지 않은 벼 그루터기가 초겨울 햇살에 노랗게 빛난다. 햇살은 출렁이는 물결 위에도 내려앉아 수십 개의 흔들리는 작은 별을 만든다. 그 사이로 오리들의 몸뚱이가 물이랑을 타고 흔들린다. 바람이 불어 포도위에 메마른 칡잎을 끌고 간다. 새끼 매처럼 뽀송한 털을 가진 갈대가 몹시도 흔들린다. 비단 흔들리는 게 사물뿐이랴. 한참을 바라보자니 사람도 함께 따라 흔들린다. 어지럽다.
바람찬 연곡교에 이르러 차를 세웠다. 무엇에 놀랐는지 작은 참새 떼들이 갈대밭에서 포르르 날아오르더니 다시 내려앉기를 반복한다. 하늘을 보니 연 같은 독수리가 유유히 넓은 날개를 펼치고 아래를 호시하고 있다.
이맘때 고천암은 모든 걸 흔들어 놓는다. 넓은 들판에 서면 지향할 바를 잃고 길 또한 헤매기 일쑤다. 마음 허한 날 마냥 방황하고 싶은 날 고천암을 들러 바람에 의탁해보라. 그냥 그렇게 바람에 몸과 마음을 맡겨 흔들리고 나면 빼빼 마른 갈대의 줄기가 보인다. 그리고 마른 갈대들이 바람에 저항하며 토해내는 외침이 들린다.
풀잎은 바람보다 먼저 누울지 모르지만 갈대는 바람보다 먼저 눕지 않았다. 여린 몸이지만 서로에 의지해 바람에 버티며 쉼 없이 눕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문화배달부 일을 하고 있는 전병오씨는 흔들리고 싶을 때 고천암을 찾는다. 마음 풀어놓고 흔들릴 대로 흔들리고 나면 마음이 다시 안정을 찾는다고 한다. 그는 고천암에 와 갈대를 바라보면 왠지 모를 쓸쓸함이 밀려온다고 한다.
물기 없이 메마른 갈대, 황량한 들판, 초겨울은 부풀어 올랐던 여름과 가을을 모두 뱉어내고 안으로 안으로만 줄어드는 계절인가 보다. 구차한 살점 떼어내고 뼈대 같은 핵심을 향해 딱딱하게 야위어 가는 계절인가 보다. 박태정 기자/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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