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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영(황토사학자)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는 말이 있다. 말뜻은 여러 형태로 풀이 할 수 있으나 길이란 지구상에 생존하는 모든 사람이나 동물들이 생활의 수단으로 이용했던 명사이다. 산자락이나 강가에는 지금도 사람과 동물들의 발길로 수많은 세월동안 깎이고 밟힌 옛길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다. 이 길을 단축하기 위해 산 능선을 넘은 곳을 재라 불렀다. 해남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청풍역을 지나 별진역에서 머문 후 옥천 땅숙고개를 지나 녹산자락을 타고 상가리 를 지나 돌고개를 넘어왔다.
우슬재는 구한말 후 거리를 단축하기 위해 산을 깎아 만든 신작로이다. 이 고장 사람들은 영암과 옥천을 가기위해 금강재와 옥천재를 넘었고 강진과 좌일쪽 사람들은 오소재를, 송지와 현산은 나불재, 산이 마산은 두드럭재와 아침재를, 내사리 사람들은 당재를 넘나들며 세상과 소통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강진 귤동과 해남 연동을 자주 왕래했다. 고산은 강진 성문을 지나 옥천 대산 뒷길을 거쳐 상가 산모퉁이로 연동 외가를 왕래했다. 이 길에서 다산은 실학사상이 담긴 목민심서를 비롯한 많은 저서를 구상했다.
초의 선사와 교우했던 추사는 대흥사 오도재를 넘어 현산 덕흥리를 지나 고현마을, 장고개를 넘어 화산 관두량에서 제주배를 탔다. 그가 걸었던 길 위에는 초의가 제다한 향긋한 녹차 냄새가 배어 있다.
공재 윤두서는 현산 백포에서 고담 뒷길을 따라 매새 앞을 지나 연동 본가를 왕래했다. 하인의 등짐 속에 백포만에서 생산된 싱싱한 해산물을 가득 싣고서.
백범 김구 선생도 해남길을 걸었다. 김구는 해주감옥을 탈출해 삼남지방으로 도주하던 중 목포에서 배를 타고 화산 관두량에서 하선했다. 화산 마명리에서 길동무 이성백씨를 만나 말벗이 돼 선은산 자락인 은산과 탄동마을 옆길을 지나 안정리 앞 들판을 건너 백포마을에 도착한다. 윤진사댁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백방산 뒤 읍호리 이진사댁 식객으로 지내다 백포 앞에서 배를 타고 강진 마량으로 떠난다.
이 길은 독립투사의 한이 서린 길이다. 몇년 전 제주도에서 한 여기자의 착안으로 “올래길” 이란 옛길이 복원됐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옛길 복원이 한창이다.
우리고장 해남에서도 옛길을 복원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환영하면서도 염려스럽기도 하다. 한반도 끝자락 달마산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 산자락 해안선 따라 이어지는 이 길 위에는 사구포를 비롯 갈두항, 양포, 서포, 이진성, 달량진성 등 조선 수군의 역사와 불교문화, 포구 문화가 있다. 기왕 시작한 문화 사업이라면 철저한 고증을 거쳐 심도있는 옛길이 복원됐으면 한다.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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