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가 희망을 품으면 해남은 희망의 자화상을 노래하고, 우리가 갈등하면 해남은 분열이라는 자화상을 우리에게 남긴다. 2010년 해남은 너무도 부끄러운 자화상을 남겼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비난과 유언비어가 연일 등장해 지역사회를 급속히 냉각시키고 분열시켰다.
이젠 그 갈등 위에 원전 찬반문제가 얹혀졌다. 다행히도 찬반 모두 지역사회 분열을 우려한다. 그러나 2월말까지 결정해야하는 원전찬반 결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갈등의 폭이 커질 것이란 우려도 모두가 갖고 있다.
이 시점에서 결정을 해야 한다. 2월말에 가서 결정을 내린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때 가서 지자체장이 찬반 어느 쪽을 선택한다면 지금보다 더 큰 저항에 부딪힌다.
물론 지금 결정해도 불신은 남게 된다. 그러나 갈등이 더욱 커졌을 때 결정하는 것보단 낫다는 것이다.
박 군수는 한 번의 기회를 잃었다. 신안군처럼 원전문제가 나오자마자 입장을 밝혀버렸더라면 소원한 측이 있었을지라도 지역사회는 조용했을 것이다.
원전 찬반결정에 있어 의회도 자유롭지 못하다. 찬반 동의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동의권을 앞두고 군의원들은 원전 견학을 다녀왔다. 원전이 가동 중인 각 지자체를 돌며 장단점을 취합했다. 그렇다고 달라질 것이 있겠는가. 의회도 찬반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한다. 원전 찬반을 밝힌 양쪽의 입장은 절대로 좁혀지지 않는다. 토론을 벌인다고 해서 좁혀질 성질도 아니다. 양쪽 다 토론회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얼마 전 고흥군에서도 찬반 토론장이 싸움의 장으로 변해버렸다. 원전을 가동 중인 지차제마다 찬반 토론장이 결국 분열을 부채질한 계기가 돼 버렸다고 말한다.
군수와 의회는 찬반결정을 군민들의 몫으로 돌린다. 그것은 군민투표를 의미한다. 군민투표는 너무 큰 행정력 낭비를 불러오고 숱한 집회 등을 뒤따르게 한다.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군민들 전체에게 찬반을 강요하는 것이 군민투표이다. 또 군민 투표까지 이어졌을 때 지역사회 공동체는 초토화된다.
지역사회 공동체가 무너진 후에 오는 부귀영화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해남의 희망은 해남 사람들이다. 우리가 함께 할 때 희망은 커진다.
해남은 개방성이 강한 고을이다. 개방성이란 사람에 대한 애정과 자신이 서 있는 땅에 대한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래서 해남은 따뜻하다. 해남 사람들은 따뜻하다.
해남의 희망인 해남 사람들 이들이 분열되어선 안 된다. 박철환군수의 용단이 필요하다.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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