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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은 가족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지요, 외지에 살고 있는 가족들이 편안하게 찾을 수 있도록 고향마을에 집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인석(77.경기도 용인거주)씨는 지난해 말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형수를 위해 새집을 지었다.
형수님이 고향을 지키고 있어야 가족의 틀도 유지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박 씨는 자신이 모은 돈과 주택자금 4000만원을 더한 1억원으로 100여년 된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집을 지었다.
가족들을 위해 할일을 다 한 것 같다는 박씨, 형수님에게 새집을 마련해준 박 씨에게 마을사람들은 저런 시동생이 어디 있냐며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해남동초와 해남중을 거쳐 1954년 해남고 졸업식 때 우등상을 받을 정도로 영재였다는 박 씨는 군대 간 형님들을 대신해 대학교 진학을 접고 2년 동안 읍 안동에서 농사를 지으며 부모님과 같이 생활했다.
농사일이 너무 힘들어 도시로 나갈 방도를 찾던 중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육군사관학교와 해군사관학교 시험을 봤다. 두 곳 다 합격한 박 씨는 최종적으로 해군사관학교를 선택했다.
1960년 해군소위로 임관 후 해군 함장 등의 복무를 마치고 지난 1985년 대령으로 퇴역했다.
시흥함, 계봉함, 구축함인 충무함의 함장과 해군 1함대 작전참모, 해군정보처장 등 25년 동안 대한민국 동서남해안의 바다를 누비며 지켰다.
박 씨는 지난 1975년 4월 30일 베트남 패망직전 우리나라 교민과 교포, 피랍민들을 위해 최후 철수작전에 나섰던 군함의 함장으로 근무했던 기억이 25년 해군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해군 대령으로 퇴역 후 대한해운에 입사해 12년 동안 상선 선장으로 근무하며 오대양 육대주를 누빈 후 1997년 12월 바다를 떠났다.
55년 만에 마음 편하게 고향을 찾은 박 씨는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허름한 집에서 살고 있는 형수님이 안쓰러웠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안 되겠다 싶어 지난해 11월 새집을 지었다.
형수님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고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경기도 용인에서 살고 있는 박 씨는 가끔씩 고향마을을 찾아올 수 있는 집이 마련돼 너무 좋다고 말했다.
김창진 은빛복지기자/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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