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평생 시(詩)를 써 왔다. 한 40년은 족히 시(詩)와 함께 살아온 듯하다. 실로 많은 시 작품을 남겨 그 중 더러 세상 사람들에게 회자되기도 했다. 최근 불연 느낌이 가슴에 피어올라 한 편의 짧은 글귀를 만지고 있는데, 그건 바로 “지금이 미래다(Now is future)”라는 단 한 줄의 시구다.
왜 이런 글귀를 오랜 시간 붙잡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 보지만, 딱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나이 먹으면서 ‘오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새삼 의미 깊게 다가오기 때문이라 할 정도다. 이 생각은 다음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를 테면 ‘오늘이 중요하다,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 지금 도울 수 있는 일은 지금 실행하자, 나중의 100보다는 지금 오늘 바로 이 순간에 1을 하자, 그러므로 미래라는 말은 필요 없다’ 하는 생각이 “지금이 미래다(Now is future)” 하는 시구를 떠올린 듯하다.
그리하여 “Now is future” 라는 단 한 줄의 글귀를 올렸더니, 많은 사람들이 클릭을 하는 것이 아닌가. 놀라워라, 사상파 시인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는 1년 전에 파리의 라콩코드 지하철역에서 본 경험을 30행의 시였지만 마지막에 14단어로 된 “지하철역에서”(In A Station of Metro)라는 두 행 “군중 속에서 홀연히 출몰하는 얼굴들 / 젖은, 검은 가지 위의 꽃들(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 Petals on a wet, black bough.)”의 시를 썼다. 필자는 우연히 적으나마 감동을 주는 단 한 줄의 시행으로 시를 이렇게 짓게 되다니.
이에 용기를 내어 필자는 최근 지난 45년 간 공부한 영문학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강의를 해야 한다는 욕망에 빠져들게 됐다. 사교육이 판치는 세상에 무료로 필요한 사람에게 Experience project를 시작하여 경험을 토대로 영어를 쉽게 빨리 배우는 방법을 모든 이에게 알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굳힌다.
문제는 사실 이런 생각을 보다 젊은 시절에 수없이 해 왔으나, 분연히 실행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지금 당장!”이 중요함에도 말이다.
이에 장자의 일화를 떠올린다.
장자가 곡식을 구하러 갔더니 김하우가 말한다. “내가 장차 봉읍의 부세를 받아들이려 하는데, 거기서 3백금만 당신에게 빌려드리지요.” 당장 돈이 필요했던 장자가 화를 내며 말했다. “들어 보시오. 내가 이리로 오는 중에 수레바퀴 자국의 고인 물속의 붕어 한 마리가 두 되의 물을 구해 달라 하기에 장차 남쪽으로 오나라 왕에게 유세하러 갈 터인데, 그렇게 되면 서강의 물을 끌어다가 그대를 흠뻑 적셔주도록 하겠네, 하고 대답했더니, 붕어가 분연히 말하길, 선생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차라리 내일 아침 일찍 건어물 가게에서 나를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요, 나는 단지 두 병의 물만 얻으면 살아날 수 있는데….”
그러므로 문제는 ‘당장’이다. ‘장차’가 아니라 다만 ‘지금’이 문제다. 그리하여 따뜻한 말 한 마디를 오늘 하자. 아름다운 그림이 있으면 오늘 가서 보자. 오늘의 진실이 없으면 내일의 진실이 있을 수 없다. 필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을 한 번도 챙겨주지 못하였고 늘 내년으로 미루었다. 죄스런 일이다. 내일이라는 말을 가급적 하지 말고 목마른 자에게 오늘 한 잔의 물을 주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인으로서 오늘 달려가 한 편의 시를 읽어주고, 필요한 사람에게 학자로서 영어로 대화를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자. 내일이면 이미 늦은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남은 세월을 현재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으며 시인과 학자로서 당장 실행할 것임을 세상에 천명해 둬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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