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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새벽 2시 북일 내동마을 선착장이 시끌벅적하다. 200여명에 이른 주민들의 긴 행렬이 이어지고 50여척의 배가 바다를 가른다. 거동이 어려운 노인과 아이들만 빼고 전 주민이 새벽 바닷길에 나선 날. 개불 잡는 날이다.
1년에 딱 한번 있는 날. 이날이 아니면 마을 주민들도 개불 구경을 못한다. 마을공동어장에서 이뤄지는 개불 잡이는 그야말로 북일 내동마을의 가장 큰 잔치이자 하루 소득이 가장 높은 날이다. 1년 내내 이날을 기다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외지에 출타한 사람들도 이날은 모두 집으로 돌아온다.
많게는 개인당 1500마리, 평균 700~800마리를 잡는다는 개불, 한 마리에 1000원에 팔리니 하루 소득이 70만원에서 150만원에 이른다. 어림잡아 하루만에 마을소득이 1억원에 가깝다. 소득이 이러하니 누가 개불잡이에 빠지겠는가.
새벽 2시 어민들을 태운 배가 마을앞 서등도로 향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바다위에 점점이 떠 있는 불빛, 장관이다. 그러나 매서운 추위 속에서 어부들은 허리까지 차는 바닷물에 들어가 개불을 잡는다. 추위가 매섭다. 그러나 손길은 바쁘다.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아깝다.
개불잡이는 2인1조로 이뤄진다. 남편은 바닷물 속에서 직접 제작한 포크모양의 삽으로 뻘모래를 떠서 그물채에 담는다. 그러면 부인은 그물채를 흔들어 뻘과 자갈에 섞어 있는 개불을 추려내 통에 담는다. 추위 속에서도 손발이 척척 맞는다. 한기 속에서도 시간은 흐르고 잡은 개불의 숫자도 늘어난다. 통에 담긴 개불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지칠만 하지만 물이 들어 올 때까지 누구도 일손을 늦추지 않는다.
시간의 나이테는 개불잡이에서도 어쩔 수 없나보다. 젊을수록 잡은 개불의 숫자가 많다. 젊은 사람은 1500마리까지, 나이 드신 분들은 1000마리를 밑돈다. 물속에 들어가기 힘든 노인들은 어쩔 수 없어 뻘에서 개불을 캔다. 당연히 마릿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매년 이뤄지는 개불잡이 풍경도 조금 변했다. 예전에는 부인이 밧데리를 이용해 켠 전등을 허리에 매달아 불을 밝혔다면 지금은 광부처럼 전등이 켜지는 모자를 모두 착용하고 개불을 채취한다. 한결 편리해졌고 바다 속도 그만큼 잘 보인단다.
새벽 2시부터 시작된 개불잡이, 동녘이 뿌옇게 밝아오려 한다. 때를 맞춰 물이 들어온다. 아쉽지만 내년을 기약하고 배를 돌려 집으로 돌아오니 아침 7시다.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겁다. 그러나 쉴 수는 없다. 아침밥을 대충 때우고 개불손질에 나선다. 내장을 꺼내야 신선도가 유지되기 때문에 그 많은 개불을 모두 손질해 놓아야 한다. 내동 개불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이날만을 기다린 상인들의 발길이 이미 마을에 도착해 있다. 오전 10시부터 상인들과의 거래가 시작된다. 그렇게 많이 잡힌 개불은 오전이면 거의 팔리고 오후가 되면 집에서 먹을 것만 남는다.
물때가 한낮이었다면 동네사람들과 소주한잔 기울이며 개불잡이 무용담을 나눌법도 했는데 이날은 물때가 새벽이라서 그럴 수 없었다.
내동마을 개불잡이는 매년 설을 전후에 이뤄진다. 올해는 해남우리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찾아가는 마을 음악회가 개불음악회라는 이름으로 내동에서 열리기로 했었다. 그러나 구제역 때문에 음악회가 연기되자 개불잡이도 함께 늦어지게 됐다.
내동마을 공동어장은 마을 청년회에서 관리한다. 청년회에서는 매년 개불잡이 날을 정하고 나이 드신 어르신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1년 내내 개불잡는 날을 기다려온 주민들, 지난 18일 낮부터 19일까지 내동마을은 개불잡이 준비에서 판매까지 너무도 바쁜 겨울하루를 보냈다.
한편 개불은 여름철에 바다 밑바닥 1m 아래에 틀어박혀 있다가 수온이 차가워지는 한겨울 번식을 위해 표층으로 이동한다. 보통길이가 10∼15cm 정도, 굵기는 2∼4cm 정도이고 살색이며 개의 고환을 닮았다해서 ‘개불’이라 불린다.
박영자 기자/
해남우리신문
wonmok76@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