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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집에 다녀오겠습니다.
눈이 옹께 날이나 좋아지면 가제 그러냐
약속을 했으니 갔다가 오겠습니다.
니 할머니 기다리싱께 어만 디로 빠져불지 말고 얼릉 와라
청년은 그렇게 집을 떠났다. 오직 청년만을 위해 사셨던 할머니가 집에 없던 날.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남기고 절로 향한 것이다.
이 시대의 가장 순수한 정신의 소유자이자 숱한 저서를 통해 무소유의 철학을 알려왔던 법정 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무소유’는 땅끝마을의 가난한 시골 소년이 탐욕과 무지의 세속을 벗어나 무아와 무소유의 삶을 이루는 과정을 담고 있어 해남출신이라면 꼭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이 책에는 법정스님의 초등학생 때의 일과 납부금을 제때 내지 못했던 가난한 중․고등학교 시절이 소상히 소개된다.
밤이면 할머니 팔베개 위에서 소금장수 같은 옛이야기를 듣고 잠을 잤던 소년. 할머니가 너무 좋아 마을가게에는 없던 귀한 담배를 사기위해 10리 길을 걸었던 소년 법정이었다.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작은 아버지 집에서 생활했던 법정스님은 목포로 중학교를 간다.
그러나 대학교 때까지 괴롭혔던 납부금, 중학교 2학년 때 납부금을 타기 위해 우수영 작은 아버지에게 왔을 때 할머니는 “애기 가슴이 얼매나 탔으면 내려왔것냐, 이왕 줄 꺼면 싸게 줘뿌러라”며 작은 아버지를 나무란다. 납부금을 대주지 못한 작은 아버지 마음도 타고 어린 법정도 울면서 집을 나선다.
그런데 “니 작은아버지와 나중에 셈할 텐께 이돈 갖고 올라가라”며 돈을 쥐어주던 풀빵 아저씨.
우수영 보통학교 5학년 때 일본인과 똑같이 하고 다녔던 조선인 교사에게 무자비하게 맞았던 이야기도 쓰여 있다. 일본말을 강요하는 교사가 너무도 싫어 무심코 투덜대던 말 때문에 온 몸이 피가 나도록 얻어맞았던 소년 법정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여동생을 낳았던 어머니가 그토록 야속했지만 대학교에 다니던 뒤부터 그리웠던 어머니, 난생처음 사랑하는 어머님께라고 편지를 썼던 그였다.
특유의 불교적 사유를 바탕으로 문학작품과 산문을 써온 작가 정찬주가 무소유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 가신 법정스님의 소박하면서도 위대한 삶을 소설화한 소설 무소유는 법정스님이 태어나 출가하고, 수행하고, 입적하기까지의 모든 행적이 섬세하면서도 담백한 문체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편 법정스님은 1932년 우수영 선창가인 선두리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란 법정스님은 우수영초등학교 27회 졸업생이다.
법정스님 1주기 추모법회가 지난달 28일 길상사에서 열렸다.
또 ‘비구, 법정 추모사진전’이 2일부터 8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리고 있는 가운데 법정스님에 대한 각종 저서들이 다시 서점을 장식하고 있다.
박영자 기자/
해남우리신문
wonmok76@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