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굿 살아나고 면마다 풍물패 활동 보람
대동놀이 큰 굿판 만드는 게 유일한 희망


풍물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0년 공주사대시절 1학년 때부터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풍물은커녕 우리 소리 한 번 들은 적이 없었다. 처음 접하게 된 풍물과 우리 소리가 그렇게 멋질 수 없었다. 당장 탈춤반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풍물에 빠져버렸다.  
졸업을 앞두고 마당극과 같은 민족극패 활동을 하려 했다. 당시 화천농악 도지정문화재로 지정된 선배에게 “고향 해남에 군고가 있는데 다른 지역에서 활동할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를 듣고 해남으로 향했다. 97년 잠깐 해남에 내려와 스승이자 선배인 박필수씨를 만난 것이 해남에서 풍물꾼으로 뿌리를 내리게 된 계기가 됐다.
2000년 해남 군고와 함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낙향을 해 땅끝해맞이축제에 참여했다. 해남 지역이 보유한 군고는 웅장하고 남성다운 특징이 있다.
대학교 때는 그저 치고 때리는 신명이 좋았는데, 지금은 풍물을 통해 지역 공동체 형성에  어떻게 기여할까를 고민한다. 군고를 접하면서 지역문화의 중요성과 보존에 대한 책임감도 알게 됐다.  
현재 현산, 화산, 마산, 북평면에서 이동여성회관 프로그램인 풍물을 지도하고 있으며, 초등 방과후 학교 풍물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풍물의 향유 계층은 노년층이다. 어쩌면 이 세대가 사라지면 풍물 또한 민속박물관 구석 전시품으로 남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우리의 소리를 자주 들려줘야 하는 것은 우리 문화에 대한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함이며, 성인들을 상대로 한 강습은 지역의 행사에 풍물을 자주 올려 우리 문화를 보존하자는 차원이다.
대부분의 풍물 강습생들은 여성층이 95% 이상을 차지한다. 남성들의 경우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주말에 몰려 있기에 주로 축구, 야구 등 스포츠 활동으로 보내는데, 정작 풍물 강습 시간은 주로 평일 낮에 열리기 때문에 남성들의 접근성은 어렵다.
부부동반이나 가족단위 프로그램을 개발해 풍물의 저변화를 꾀하고 싶다.
해남에 내려와 보람이라면 풍물을 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14개 읍면에는 모두 풍물패들이 있다. 마을 굿도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문화원의 마을 굿 살리기로 북평 이진마을, 송지 동현마을의 마을 굿은 이젠 정착 단계에 있다. 민예총과 함께 한 남창 줄다리기는 이제 마을축제로 자리잡아 매년 행해지고 있고 면단위 풍물패가 조직되면서 면민의 날, 마을의 경로잔치, 노인의 날 같은 행사에서의 활동이 늘어나 반갑기 그지없다. 그러나 삶이란 명암이 엇갈리게 마련인가 보다. 비교적 잘 유지돼온 마을 당제의 경우 특정 종교와의 갈등으로 서서히 박제화 돼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해남민예총 사무국장이며 풍물분과위원인 김정삼(41)씨는 수동적인 삶보다는 적극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해남에 구심점이 되는 큰 굿판인 대동축제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박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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