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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들녘, 마을 어우러진 땅끝풍광에 찬사
땅끝과 서울을 잇는 천 리 삼남길의 첫 구간인 해남구간 총 56.3km 개통식이 지난 9일 땅끝에서 열렸다.
이번 삼남길 개척에 있어 그 누구보다 기쁜 마음으로 지켜본 이가 있으니 바로 손성일(40) 삼남길 개척대장이다.
손 대장은 코오롱스포츠와 전남도, 해남군이 후원하는 12인 삼남길 개척단 대장이다. 삼남길은 해남~광주~천안~서울을 잇는 500km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장거리 걷기 코스로 12명의 고객을 매월 초청해 길을 개척하고 있다.
손 대장을 비롯한 팀원들이 사전답사를 통해 미리 코스를 정해 놓으면 최종단계로 고객을 초청해 표지기를 달고, 화살표 스프레이를 뿌리는 등의 작업을 한다. 그의 명함에는 로드 플래너(road planner)라 적혀 있다. 걷기 코스를 개척하는 게 그의 직업이다.
길에 미친 남자, 그것도 단단히 미쳤다. 돈이나 여자에게 미쳤다면 이해가 갈 텐데 이 남자는 묘하게도 길에 미쳤단다.
손 대장은 1987년부터 산을 탔다고 한다. 백두대간과 한남정맥을 완주했고 국내산은 400개 정도를 탔다. 등산잡지를 수년간 정기 구독할 정도로 산꾼이었던 그가 전국일주에 나선 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 위해서였다. 800km에 이르는 장거리 코스를 가기 전에 우리나라를 먼저 걸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를 위해 직장까지 그만 뒀다고. 35세에 직장을 그만두고 전국일주를 하는 그를 보고 처음에는 “대단하다”고 하던 사람들이 나중에 꼭 하는 말은 “나중에 뭐 먹고 살거냐”였다. 스페인 산티아고를 걸을 때도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정해진 800km의 코스만 걷는데 그는 4개 코스를 더 걸어 총 1870km를 걸었다. 현지의 순례증명 관계자들이 “당신 미친 거 아니냐”고 얘기했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 그는 한국에도 이런 길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길을 걷기 시작할 당시 1년만 걸을 생각이었는데 직업으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2006년부터 1만3000km를 걸었다고 한다. 보통 적게는 3번 많게는 7번을 답사해서 길을 만드는데 일주일에 5~6일을 걷는다고 한다.
그런 그가 삼남길을 개척하고자 해남을 출발해 강진, 나주, 광주, 완주, 익산을 거쳐 평택, 수원, 서울 남태령, 남대문까지 이어지는 1000리길을 걸어서 갈 수 있는 가장 편한 길을 만들겠다며 나선 것이다.
현재까지 손 대장을 비롯한 개척단은 1차로 지난해 10월 16일과 17일까지 첫 길을 열었고 2차로 같은 달 30일과 31일 통호리에서 서흥리까지 길을 다듬었다.
3차는 11월 20일과 21일 서흥리와 와룡리를 돌았다. 각 개척단은 코스마다 이름도 지어 붙인다. 1구간은 처음길. 처음 마음처럼 변함 없으라는 의미다. 2구간은 올망졸망한 코스를 따 이름도 올망길로 지었다.
3코스는 해들길. 유난히 들이 많았고 해가 비친 길의 풍광이 백미라는 뜻이다.
말이 개척단과 함께 만드는 것이지 사실 모든 길은 손 대장이 미리 다 가보고 손대고 다듬은 길이다. 손 대장 팀은 그림자 같은 4명의 대원이 함께 움직인다. 해남구간 개척을 위해 해남만 둘러본 게 10번이 넘는다. 이제 해남구간은 손금만큼 훤하다.
손 대장은 “해남길은 풍광으로는 최고의 길이에요. 마치 제주 올레와 지리산 둘레길을 합쳐 놓은 느낌이랄까요. 남해의 저 코발트빛 바다, 그리고 한쪽으로 늘어선 든든한 산. 거기에 섬에 한정된 게 아니라 뻗어가는 활기참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손 대장에겐 길은 곧 삶이요 전부다. 남들은 바쁜 생활 속에서 가끔씩 걷기나 도보를 생각하지만 손 대장은 반대다. 내내 걷기만 생각하다 가끔 딴 생각을 한다는 그는 진정한 길꾼으로 불릴 만하다.
김희중 기자/
해남우리신문
wonmok76@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