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놀이치료연구소에 출근하면 마트로시카 인형이 동그란 얼굴로 날 반깁니다. 재활용품과 이러저러한 이유로 기부한 물건들 속에서 이 인형을 보고 얼마나 기쁘던지 팔짝팔짝 뛰었던 지난겨울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저는 서울 미아동의 “아름다운 가게”에서 이 러시아인형을 구입했습니다. 인형 5개가 크기별로 언제나 절 바라보고 있습니다. 넣으면 안으로 쏙쏙 들어가서 하나가 되는 인형은 소원을 빌며 넣으면 이루어진다는 러시아 전설이 있어 힘들 때나 마음이 허할 때는 친구처럼 바람도 이야기하고 품에도 안아봅니다. 나무로 된 인형에 온기는 없지만 손에 쥐면 미아동의 얼굴들이 즐겁게 스칩니다.  인형 안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져있습니다. 이 인형을 샀을 때의 행복했을 기분과 기부할 때까지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있어 따뜻한 인간적 역사가 느껴집니다.
몹시도 추워 웅크려 지내던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동네를 돌아다니다 재활용가게인 “아름다운 가게”를 발견했습니다. 그 후로 사람 보는 재미, 물건 보는 재미로 그 가게를 들락거렸습니다. 자원봉사자인 대학생부터 백발의 어르신까지 장갑을 끼고 물건 정리하고 바삐 움직이시는 모습을 보면 기운이 나곤 했습니다. 근처 보험회사나 상가에서 사람들이 기부한 물건들을 파는 이 가게는 기부하는 사람과 물건을 사는 사람들로 늘 북적입니다.
해남에 살면서 헌 물건에 익숙하지 않은 저는 만지작거리다 도대체 누가 입던 옷일까? 누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일까? 하며 선뜻 고르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꺼림직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손 때 묻은 물건들 구경하는 재미가 점점 쏠쏠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렴한데다 기부하는 사람의 고운 심성까지 느껴졌습니다. 관심을 갖게 되자 나도 기부할 것이 없나 찾다가 종이 쇼핑백 하나하나 개키면서 흐뭇해지곤 했습니다. 그 작은 가게에는 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이 장난감을 골라주고 아름다운 가게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는 미래는 희망으로 가득 찰 것 같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아무 거리낌 없이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지금 초등학교에서는 가끔씩 장터가 열리고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은 환경 보호와 함께 재활용의 중요성을 배우고 있습니다.
눈을 두는 곳 어디에나 시선이 머물고 싶은 살갑고도 아름다운 봄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얀 벚꽃 잎이 떨어지고 나서는 연두 잎들이 나와 살랑대며 기운을 북돋우는 군청 앞길을 지나 일터가 있는 YMCA 현관을 들어섭니다. 1층에는 해남지역 어르신들이 주체가 되어 재활용품 가게인 “행복한 가게”를 준비하시느라 모으고 있는 재활용품 박스나 옷가지, 플라스틱 옷걸이까지 피난민 짐처럼 쌓여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 있는 것이어서 보기만 해도 따뜻해지고 깨끗해지는 느낌입니다. 딸 시집보낼 때 준비하는 것처럼 아주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준비하시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신 어르신들의 노고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우리가 살아가기 좋은 세상이 어떤 세상일까 생각해봅니다. 새 것을 늘 살 수 있는 경제력과 시간이 있어서 부족함이 없는 세상일까? 아니면 부족하지만 서로 나누면서 긍정적 관심을 갖고 함께 살아가려는 세상일까?
서로 나누고 낡은 것과 새 것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세상이 정말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 하며 해남을 아름답게 꾸며 가려는 사람들과 함께 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저작권자 © 해남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