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설핏 불자 살갗을 어루만지는 바람결을 따라 청량한 풍경소리가 그윽하다. 어디서 꽃잎이라도 하느작거리면서 날아와 사람을 반길 것만 같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옥천면 만년리 명유당을 찾았다. 무인 찻집이란 소문을 듣고 찾았는데, 운 좋게 찻집 주인을 만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차향 같은 얘기를 나눴다.
찻상을 마주한 김명유(49)씨는 간간이 차를 우려내며 빈 잔에 넉넉함을 채운다. 잠시 얘기가 끊기면 차향을 따라 방안 가득 비발디의 사계가 깔린다.
김씨는 고흥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증심사의 스님에게 차를 얻어마신 것이 잊혀지지 않아 차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김씨는 보성의 선혜 스님과 해남의 여연 스님에게 제다와 다도를 배웠다. 특히 해남을 내려오게 된 이유는 여연 스님을 모시게 된 이후부터라고 한다.김씨는 40세 되던 해에 일지암을 찾았는데, 꼭 그런 모습의 다실을 갖고 싶은 소망이 생기더란다. 해남 일대를 물색하던 중 폐가 하나가 눈에 들어왔는데, 서까래가 살아있어 개조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의 명유당이 되었다.
차를 마시면 자신의 내면까지 다스려진다며 김씨는 차 한잔 보시하는 마음으로 다실을 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화순의 학교에서 예절 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집을 비우는 날이 많다며, 외출할 때도 늘 다실을 개방해 놓는다고 했다.
이런 김씨의 마음을 아는 지 찾아오는 사람들도 차를 마시고 나면 마루에 놓인 보시함에 찻값을 넣어두고 간다고 한다. 김성길(해리)씨는 지인들의 얘기를 듣고 찾은 명유당에서 한가롭게 책도 보고 차도 마시고 왔다며, 바쁜 일상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 번 찾아보라고 권유하고 싶다고 했다.
명유당은 다모임 회원들도 왔다 가는데, 해남은 물론 해남에 관광차 왔던 부산, 울산, 대구 등지의 회원들도 들렀다 간다고 한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차를 아는 사람들끼리의 신뢰가 있어서인지 아직 물건을 잃어버린 적은 없단다. 김씨의 나눔의 마음에 화답하듯이, 김씨는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은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떨어질 만하면 사람들이 쌀, 된장, 고추장, 김치 등을 두고 가기 때문이다. 김씨는 물물교환이라고 하는데, 명유당이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박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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