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전 두륜산 봉우리 아래에 부처님의 도량이 세워집니다.
부처님의 도량을 향한 10리 길, 천 년 전에도 지금도 구도자는 이 길을 걷습니다. 그 길 위에는 9개의 다리가 놓여있습니다. 처음에는 돌다리였던 것이 나중에는 나무다리로 바뀌고 그리고 지금과 같은 돌과 시멘트 다리로 변화를 합니다. 천년의 세월동안 다리도 수 없는 변모를 했던 것이지요.
우리는 여기서 처음 다리를 만들었던 이의 지혜를 읽습니다. 9라는 숫자는 불안전한 인간을 의미합니다. 완성된 숫자인 10을 향한 인간의 노력, 결코 절대자인 신의 경지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그 지향점을 향한 인간의 의지를 다리의 숫자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상은 탑에서도 불 수 있습니다. 사찰 안에 조성된 탑의 층수는 모두 완성을 의미하는 짝수가 아닌 불안전한 숫자인 홀수를 취합니다. 3층, 5층, 7층 석탑처럼 말입니다. 인간의 겸손함이지요. 그러나 결코 좌절하지 않고 완성을 향하려는 인간의 굳은 의지도 함께 내포된 숫자입니다.
어느 구도자가 있습니다. 부처님을 향한 구도의 길, 그가 처음 만난 다리가 조암교(曺巖橋)입니다. 집단시설지구 내와 연결된 이 첫 다리는 이름에서 보여주듯 커다란 바위 다리였나 봅니다.
듬성듬성 놓여있는 바위 징검다리를 건너니 두 번째 다리인 현무교(玄武橋)가 나타납니다. 매표소 바로 지나 만나는 이 다리는 두륜산의 좌청룡과 우백호가 마지막으로 만나는 끝 지점이자 북쪽으로 흐르는 아홉구비 물길의 마지막 지점이라 해서 북쪽 사신인 현무에서 이름을 땄습니다.
현무교를 지나 걷는 구도자의 눈에 스님들의 다비의식을 치르는 곳인 다비지가 나타납니다. 두 손 모아 합장하며 그 앞에 놓인 다리를 건너니 그 다리이름이 바로 니원교(泥洹橋)입니다.
구도자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지치고 포기하고 싶고 숱한 세속의 유혹에 구도자는 갈등합니다. 그런데 아름드리 소나무가 눈에 들어옵니다. 하얀 뭉게구름을 향해 힘차게 뻗은 소나무의 기상이 구도자를 다시 일으킵니다. 소나무를 통해 힘을 얻은 구도자가 건넌 다리가 운송교(雲松橋)입니다.
대흥사 가는 길에는 예나 지금이나 붉은 입술을 토해내는 동백꽃이 아름답습니다. 붉디붉은 동백꽃이 수북이 떨어진 계곡. 물도 붉습니다. 구도자는 그 붉음에 넋을 잃고 만난 다섯 번째 다리를 홍류교(紅流橋)라 이름 짓습니다.
옛날 대흥사 구 주차장 주변에는 매화꽃이 만발했나 봅니다. 골짜기에 가득 핀 매화가 계곡물에 떨어져 흐르다 다리 주변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그물에 꽃이 가득 걸린 듯해 그물망자를 써 망화교(網花橋)라 이름 합니다.
여섯 번째인 망화교를 지나 만난 다리가 대흥사 구 매표소 앞에 있는 피안교(彼岸橋)입니다. 1967년에 김종필 총리가 재건해 줬다고 해 김종필 다리로도 통합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김 전 총리는 피안교 교각에 글씨를 남깁니다.
구도자가 세속을 벗어나 부처가 있는 피안의 세계로 접어든다는 의미인 피안교는 많은 아픔을 간직한 다리이기도 합니다.
홍수 때마다 자주 무너졌던 이 다리는 1751년 대공사를 통해 무지개 모양인 홍교로 건립됩니다. 그런데 이 다리 때문에 대흥사가 오래 견디지 못할 것이란 말을 믿었던 어떤 스님이 이 다리를 허물어 버렸고 다리에 쓰였던 돌들은 해남읍에 있는 홍교를 만드는데 사용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대둔사지에도 그 과정이 자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피안교는 본래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는 다리라는 의미에서 사자교라 불렀고 수많은 물줄기가 모이는 곳에 위치한다고 해 만폭교라고도 불렀습니다. 또한 청색을 띤 돌다리가 무지개 모양이어서 청홍교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피안교를 지난 구도자는 다시 여덟 번째 다리를 만납니다. 서산대사 아명을 딴 운학교(雲鶴橋)입니다. 부도전을 지나 만나는 이 다리는 이후 쌍옥교로 바꿔 부르다가 1972년 100년만의 대홍수로 유실이 되자 조선내화 이훈동회장의 후원으로 재건하고 반야교라 이름 짓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반야의 경지를 지나야 피안의 세계에 이르는 법인데 피안교 다음 다리가 반야교가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해 다시 본래의 이름인 운학교로 개명을 합니다. 운학교에서 서산대사의 고귀한 나라사랑을 가슴가득 안은 구도자는 이제 마지막 다리를 남겨놓게 됩니다. 대웅보전 앞에 놓인 심진교(尋眞橋)입니다. 심진교를 건너면 부처님이 계시는 대웅보전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래서 다리 이름도 진리를 찾아 건넌다는 의미에서 심진교라 이름 짓지요.
쉬엄쉬엄 10리 숲 터널을 지나야 만나는 대흥사, 계곡과 주변 풍광이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다리를 구도자의 마음으로 건너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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