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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습니다. 달나라에 있는 토끼가 미황사에 잠시 내려왔을까요. 그런데 미황사 부도에 새겨진 토끼는 우리가 상상했던 날렵하고 어여쁜 토끼는 분명 아닙니다. 통통하고 배도 불록 나온 못생긴 토끼가 열심히 방아를 찧는 모양이 웃음을 짓게 합니다. 어쩜 그 촌스러움이 친근감을 더 갖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외다리 오리도 있습니다. 다리 하나 들고 한 다리로 몸을 버티고 있습니다. 수 백 년의 세월동안 그 자세로 있기엔 정말 힘도 들듯한데 머리를 당당히 위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힘이 들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미황사 부도전은 동물원입니다. 부도마다 갖가지 재미있는 문양의 동물들이 조각돼 있습니다. 근엄하신 큰 스님의 부도에 새겨진 동물치고는 점잖지 못하고 방정맞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해학미가 있기에 미황사 부도전은 친구 같습니다. 그러한 소박미가 미황사를 더욱 미황사답게 만들고 민초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모르지요.
미황사 부도전의 동물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여의주를 당당히 문 용이 있습니다. 신령스런 용은 언제나 당당하고 위엄이 서린 모습으로 우리에게 각인돼 있습니다. 그런데 미황사 부도전에 있는 용은 영 시원치 않습니다. 너무도 큰 여의주를 애써 물고 있는 모양이나 얼굴도 정면을 향하지 않고 약간 옆으로 꼰 모양이 우습습니다. 더 웃긴 게 있습니다. 용의 코가 돼지 코입니다. 하늘을 향해 뻥 뚫린 둥그스름한 코. 나 참. 용을 이렇게 표현해도 될까요. 그래도 그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다리가 영 시원치 않은 사슴도 보이네요. 네 다리를 힘 있게 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모습이 갓 태어난 사슴 같기도 하고 엄마에게 어리광 피우는 막내둥이 사슴 같기도 합니다. 저런 힘없는 모습으로 얼마나 더 걸을 수 있을지, 아마 걸음마를 배우고 있는 중인지 모르겠네요.
미황사는 게와 거북이를 참 좋아하나 봅니다. 대웅보전 주춧돌에도 게와 거북이가 조각돼 있지만 여러 부도에도 빠짐없이 게와 거북이가 등장합니다. 거북이는 신성한 동물로 취급받고 있지만 흔하디흔한 게는 그렇지 못하지요. 또한 거북이는 느림의 대명사고 게는 빠름의 대명사일 만큼 서로 닮은 데라고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두 동물은 함께 등장합니다. 대조를 통한 상생의 자연법칙을 중생에게 깨우치기 위함인지 모르지요.
부도에는 귀신상도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여러 귀신상도 무섭기 보단 너무 해학적입니다. 문어모양인 귀신상은 왕방울 눈에 주먹코를 하고 있습니다. 남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승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남도 장승의 특징은 뚝 튀어나온 왕방울 눈에 헤 벌이진 입, 듬성듬성한 이빨, 주먹코가 대부분이지요.
여러 가지 서수도 보입니다. 위로 기어가거나 옆으로 또는 아래쪽을 향한 것도 있습니다. 모두들 귀엽기 짝이 없습니다.
미황사 부도전은 그야말로 동물원입니다. 미황사 부도에는 왜 이리 재미있는 동물문양이 많이 있을까요.
미황사 창건설화에서 나타나듯 바다를 통해 인도 불교가 전래되었기 때문이라는 설에서부터 미황사가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 등이 있습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조선 초기 부도는 엄격한 틀을 유지했고 장식도 장엄미가 넘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들어서면 장엄미보다는 부도 제작의 기본 틀이 깨지고 장식도 해학적인 동물문양 등이 많이 등장합니다. 미황사 부도는 조선후기에 제작된 작품들입니다.
미황사 부도에 새겨진 다양한 문양들은 수 백 년 동안 사라지지 않는 생명체로 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이후에도 이 문양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보일 듯 말듯 한 곳에, 꼭 숨바꼭질하듯 찾아야하는 곳에 새겨져 있는 문양들, 모양은 못생겼고 웃겨도 또한 하찮은 것이라고 해도 돋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 너무 평범한 우리 중생을, 나의 모습을 본 듯한 데서 오는 긴밀한 유대감은 아닐까요.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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