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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으로 알려진 만수 김정준 박사는 30대 초반 폐결핵 6기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요즈음 같으면 말기암 판정과 비슷합니다. 해방 직후인 1946년 치료약이 별로 없던 시기 마산 결핵요양원은 치료보다는 격리 수용의 의미가 더 컸습니다.
폐결핵 말기로 쓰러져 김천 황금동교회를 사임하고 아내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수용소에 들어갔던 그는 매일 환자가 죽어나가는 6기 환자 병동에 있었습니다.
그가 병동에서 보고 놀란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불평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영양사나 사무직원 등 병원 당국이 환자들 특히 6기 환자는 죽을 사람으로 보고 제대로 대해 주지 않는다는 불만이었습니다.
그리고 삶을 포기한 것 같은 실의에 가득 찬 분위기였습니다. 옆의 중증 환자가 내는 앓는 소리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져 시끄러워서 잠을 자지 못하겠다고 불평하는 사람을 보고 더욱 놀랐습니다.
6기 환자는 가족들도 면회 오는 사람도 적어 더 소외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는 가끔 주말에 오는 아내를 보면서 직장에 다니며 아이들을 돌보는 데에 안쓰러움을 느꼈습니다.
또 그는 중증 환자의 식사 시중이나 잔심부름을 해주었고 환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시편 1편에서 150편까지 전부를 외었습니다.
경건과 탄식 고난과 의지에 대한 깊은 묵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요양소에서 그는 경전이나 다른 책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도소나 병원은 일상의 일에서 벗어나 있는 곳이기에, 뜻이 있는 사람에게는 충전의 기간이 되는 곳입니다. 그 곳에서 시편을 깊이 묵상하였습니다.
깊이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이 상실의 고통을 치유하는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깊이 슬퍼하고 어떻게 상실의 고통을 치유해야 하는 지를 잘 모릅니다.
삶의 고통에 충분히 동참하려는 용기를 지니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깊이 슬퍼하고 아파할 수 없다면 고통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항상 고통을 불러올지도 모르는 일과는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합니다.
중요한 일에는 반드시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으니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누구와 친밀해지거나 돌보거나 돌봄을 받는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 아무 영향을 받지 않더라도 우리는 결국 어떤 식으로든 고통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깊이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은 어쩌면 인생의 가장 기본적인 기술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상실의 고통에서 치유되어 다시 삶을 사랑하고 지혜를 키울 수 있는 길입니다. 삶을 사랑하고 지혜로 가는 길은 관용과 감사의 길입니다.
시편을 묵상하면서 그는 고난가운데 탄식하며 기도하는 신앙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환경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정의의 길, 자유의 길, 평화와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고난당하는 것이 유익이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을 수긍할 수 있었습니다. 3개월 시한부 인생이 2년 6개월 만에 완치되어 오직 은혜라는 감사의 마음으로 살았던 그는 성경의 공동번역을 이끌었으며, 연세대 신학대학원장 등을 지내면서 구약학의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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