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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우리신문에는 매주 새 생명의 탄생을 세상에 알리며 축하하는 기사가 있다.
사진과 함께 부모님의 아기에 대한 덕담이 함께 실린다.
매주 해남군에서 태어나는 새 생명이 몇 명인지 알 수 없지만 행정 시스템을 이용해서 아기들의 탄생을 알리는데 지면이 허락한다면 모든 아이들이 실렸으면 한다.
왜냐하면 이 기사란은 다른 어떤 뉴스보다 가치가 있고 먼 훗날 이들 새 생명이 해남을 이끌어 갈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는 일보다 더 경사스럽고 축복할 일이 또 있겠는가.
해남우리신문의 인본주의 사상이 깃들어 있다는 점을 이 기사란을 통해 느낀다.
해남우리신문 특집란을 보면서 지역민을 사랑하는 인본주의 경향을 보게 된다.
인구 10만도 안되는 작은 지역에서 매일 몸으로 부대끼며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지역민에 대한 사랑이 길러졌으리라.
그렇다고 좋은 것이 좋다는 식의 기사는 아니다.
요즘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아미클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44쪽에 있는 이야기이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일반 시민을 동굴에 갖힌 포로에 비유한다. 이들이 보는 것이라고는 벽에 드리운 그림자의 움직임 그러니까 이들로서는 결코 파악하지 못할 실체의 투영뿐이다. 이 경우에 오직 철학자만이 빛이 비추는 바깥으로 나가 실체를 볼 수 있다라고 돼 있다.
나는 이와같은 경우에 철학자가 아니라 언론사의 기자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 기자가 좌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바로 선 기자라면 기자만이 일반시민의 실체를 볼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 실체를 바로 볼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해남우리신문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윤욱하(재경향우)
해남우리신문
wonmok76@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