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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에 촉촉이 젖은 밭으로 가면 수확을 기다리는 고구마 줄기에 고추잠자리가 쉬고 있습니다. 아침 태양이 산기슭에서 최초의 빛을 던지며 싸늘했던 배추밭이 반짝반짝 빛날 때는, 내 눈에 비치는 모든 만물이 사랑스럽고 더없이 행복한 한 때입니다.” 요즈음의 제 마음을 니시무라 카즈오 박사의 유기농법 비결의 과학이라는 책에서 한 구절 인용해 표현해 보았습니다. 고구마 수확이 마무리되어가고 절임배추가 시작되기 전, 잠깐의 시간적 여유가 생깁니다.
귀농한 지 만 4년이 되어 갑니다. 귀농한 첫해,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어린애처럼 갈 길을 모르고 방황하다가 4년이 되어가는 이제야 목표가 설정되고 가시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역시 모든 일에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한가 봅니다.
귀농한 첫해부터 농업관련 교육은 한 가지라도 더 배우고 싶어 해남 농업기술 센터를 비롯하여, 전남 농업기술원. 농촌진흥청. 농업연수원등 어디든 찾아 다녔습니다. 그때는 농사일은 없고 시간적 여유는 많아서 에너지를 쏟는 곳이 교육장이었습니다. 그리고 허울뿐인 귀농인 지원 자금을 찾아보려고 인터넷 검색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도 했습니다. 그러나 올 해 들어서부터는 농사일이 조금 늘어서인지 귀농인이 아닌 농업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아직도 귀농인 딱지를 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 손에 익는 농사일이 즐겁습니다. 안타깝게도 교육받을 시간은 많이 줄었고 귀농 지원관련 자료를 찾는 일은 없어졌지만.
“서울 사는 게 좋으냐? 해남사는 게 좋으냐?”요즈음 간혹 듣는 질문입니다. 묻는 분들은 대체로 노령의 몸을 이끌고 날품 팔기위해 나오신 할머니들입니다. 그분들의 듣고자하는 답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해남이 좋지요”라고 선뜻 대답해 줍니다. 그러면 또 돌아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뭐시가 해남이 좋아야?”이쯤에서는 하늘보고 한바탕 웃고 맙니다. 어찌 속내까지 구구절절 이야기할까 해서지요. 젊은 사람들이 다 떠나고 노령인구가 30%까지 이르고 문화시설과 복지시설이 한참 낙후된 이곳 해남. 술 한 잔 마시고 싶어서 20km를 나가도 마땅히 들어설 만한 곳 없는 이 해남이 좋다고 하는 속내를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답니까?
그러나 남들이 희망이 없다고 하는 이곳에서 나는 희망을 보았고 미래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부대끼고 어우러질 수 있는 이곳에서 아이들의 미래도 같이 키워 봅니다. 그거면 족합니다.
이슬이 촉촉한 새벽 어둠속의 밭으로 나가는 이시간이 나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때입니다.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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