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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4살, 지금도 잊지 못하는 금전 누나는 예닐곱이었다. 끔찍이도 나를 사랑해 주었던 누나는 언제나 나와 같이 놀았고 그 날도 함께 여기 뒷강으로 놀러 나왔다.
철부지였던 나의 눈에 마침 바다에 떠오른 해파리가 보였다. 한 송이 꽃처럼 생긴 것이 바다에 떠 있어 못내 신기했던 나는 누나에게 그 꽃을 따달라고 응석을 부렸다. 누나는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려고 아무런 생각 없이 가파른 갯벌로 내려갔다. 갯벌에 발을 내딛는 순간 누나는 갑자기 둔덕 밑으로 미끄러지더니 치마를 뒤집어 쓴 채 바다 안으로 둥둥 떠내려갔다. 한 떨기 하얀 박꽃처럼.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몰랐다. 다만 물에서 나오지 않고 둥둥 떠가는용누나를 수없이 부르며 발만 동동 굴렀다. 겁에 질려 누나 이름만을 수없이 반복했던 그 때. 누나는 싸늘한 죽음으로 돌아왔다. 나이가 들면서, 죽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면서 누나는 나를 더욱 아프게 했다. 화사한 봄꽃이 만발하면 누나가 그리워지고 외로운 철새가 차가운 가을하늘을 날면 누나의 넋이 창공을 울며 가는 듯 했다.
그리움과 죄스러움. 누나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누나가 죽은 지 8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장소를 찾는다. 어린 추억들은 가물거리는데 어찌하여 누나에 대한 기억은 이다지도 또렷할까. 누나를 그리는 마음 어찌할 수 없어 누나가 떠난 바다가 보이는 이곳에 정자를 짓는다. 먼 훗날 누나를 만나면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누나의 이름이 붙여진 이 정자를 보여주며 그 옛날처럼 정답게 손을 잡고 싶다.
송지면 월강마을 뒷산에는 남매의 아픈 사연이 깃든 정자가 오롯이 서 있다. 금전정이라 이름 지어진 이 정자는 전라남도 교육감을 지낸 오영대(87)씨가 자신을 위해 죽은 누나를 추모하고 누구든지 이곳에 찾아와 쉬면서 누나를 외롭지 않게 하려고 2008년에 건립했다.
현재 금정전 앞은 간척사업으로 바다가 아닌 들로 변한 상태다. 한 때 이곳은 목포로 농산물을 실어 나르는 돛단배가 드나들던 항구였다.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들 가운데로 구산천이 흐르고 있다.
한편 금전정에는 남매의 애틋함을 담은 시 한수가 남아있다.
꽃 필 적에 가신 님은/잎이 져도 안 오시네/눈 감으면 떠오르는 /안타까운 그 모습이/어제가 오늘인 듯/이렇게도 밟히는데/월강마을 오는 길을/어찌 벌써 잊었을까/못다한 남매의 정/굽이굽이 사무쳐서/오늘도 붉은 노을/구산천에 미치는데/한숨인가 눈물인가/홀로 우는 산새소리. 박영자 기자/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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