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읍 해리에 거주하는 임상영씨의 서재는 해남의 역사를 간직한 작은 도서관이다. 향토사학자인 임씨는 해남에서 인쇄 형태로 발행된 것이라면 팸플릿 하나까지도 모은 이로 알려져 있다. 임씨는 신문과 잡지를 비롯해 3000권 정도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디에 어떤 자료가 있는지 자신도 찾기가 불편해 최근들어 코너별로 책을 정리했다. 임씨의 서가에는 각종 정기간행물의 창간호가 있고, 윤선도, 임억령, 유희춘 등에 의해 가려진 구한말 해남의 3문장 노하 박모, 낭해 이휘, 남전 최경희의 문집도 진열돼 있다. 임씨가 보유한 고문헌들은 절반가량이 후손들이나 규장각 등에서 복사해온 것들이다. 80년에 시작했다고 하니 올해로 벌써 30년을 맞이하고 있다.
임씨가 해남과 관련된 출판물을 모으게 된 계기는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데서부터 비롯됐다. 임씨는 일꾼을 부렸던 해남읍 내사리 장활마을 중농의 집안에서 외아들로 태어나 귀둥이로 자랐다. 그러나 5살에 어머니를 여의면서 천둥이 신세가 되었다. 임씨는 외아들로 큰아버지에게 양자를 가게 되었는데, 그래서 아버지가 둘이고 어머니가 셋이란다. 어릴 적에 다섯 분이나 되는 부모를 사별해 부모로부터 집안 내력에 대해 듣지를 못했는데 가정을 추스르고 알아보자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 향토사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국어교사로 출발해 남도일보기자와 농협상무를 거치고, 산림조합에도 몸을 담았던 임씨는 해남민정당 조직부장으로 있던 80년 우록 선생이 편찬한 해남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책속에 자신의 이름 하나 올라있지 않은 사실에 자극을 받아 해남에 내 이름 정도는 남겨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 향교와 종갓집을 자주 찾았고, 녹우당을 공부하기 위해 2년 동안 관광해설사를 하기도 했다. 이런 열의가 있어 95년에 해남군사(해남문화원 발행)를 편찬할 때는 책임집필위원을 맡게 됐다.
해남은 예향이 아니라 문향이라고 주장하는 임씨는 구한말 해남의 3문장의 문집에 대해 군이 나서서 번역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란 늘 강자의 편에서 기록이 된다. 그러나 한 인물이 살다간 개인사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임씨의 향토사론이다.
아울러 국사편찬위원을 하다 보니 정보가 많이 들어 오더라며, 그간 왜곡된 사실을 알아가는 재미로 산다고 했다.
틈틈이 강의를 나가기도 하고 논문도 쓰고 있다는 임씨는 컴퓨터를 못하기 때문에 늘 이곳저곳을 다니며 동냥글을 쓴다고 한다. 현재 자서전 귀둥이의 인생기를 집필하고 있다.
박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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