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군 땅끝에서 말하지 그래
생각보다 저녁이 빨리 왔다고
내내 내리는 비에도
젖는 것은 다만 껍질뿐이라고
바람이 핏줄 속을 흘러다녀도
앗는 것도 재는 것도 체온뿐이라고
산 몸을 뼈처럼 에워싸는 어둑살이
땅끝에 선 마음을 뼈처럼 세우는 중이라고
적당히 식고 적당히 무너진 저녁이 되어
적당히 썩고 적당히 버려진 갯벌 앞에 섰으니
낙지 게 바지락들과
울음 같은 악수라도 나누지 그래
사실은……, 사실은……, 하고 말하지 그래
별과 지붕이 없는 땅끝에서 혼자 밤을 맞기엔
나는 아직 화려하다고


이향지 시인 1942년 경남 통영 출생. 1967년 부산대를 졸업. 198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2003년 제4회 《현대시 작품상》수상. 시집으로 《괄호 속의 귀뚜라미》,《구절리 바람소리, 《내 눈앞의 전선》, 山詩集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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