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길고 긴 메아리여, 아~고요한 메아리여! 깊은 골짜기 대나무 숲 위를 나는 날새 소리여! 그 길고 고요한 메아리 소리에 모두 다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모두다 고개를 떨구고 슬퍼했습니다. 산도 강도 바다도 슬피 울었습니다.
봄비 같지 않았던 봄비, 봄눈 같지 않았던 봄눈, 그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비도 눈도 멈출 줄 모르고 산을 부둥켜안고 슬퍼했고 강은 강마다 줄줄줄 슬픈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염없이 두런두런 모두 다 희디흰 상복을 갈아입고 고개를 떨구고 슬피 울었습니다. 그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아- 시현(示現)이여! 시현이여!
알 수 없었던 대자연의 행보(行步)여!
나비는 나비대로 새는 새대로 곤충들은 곤충대로 카오스의 날개 짓이었습니다. 임께서 가시는 길 배웅이었습니다. 임께서 오시는 길의 영접이었습니다. 산도 강도 바다도 하늘도 임께서도 서로서로 교감의 모습이었습니다.
아- 그런데 우리만 몰랐습니다. 가장 가까이 숨을 쉬고 있던 우리만 몰랐습니다.
오만과 교만 덩어리들은 경천동지의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도 땅속 깊이 누워있던 개미들도 모두들 알고 듣고 있었던 하늘의 소식이었습니다.
임이시여! 우리만 몰랐습니다. 귀한 것을 귀한 줄 알지 못하고 고마운 것을 고마운 줄 모르고 임이 우리의 자랑인줄 모르고 우리의 귀하고 자랑스럽고 고마운 향불이 꺼져가는 줄 몰랐습니다.
개미는 하늘을 알기에 하늘의 뜻대로 살아가지만 원망하지 않습니다. 무식하고 무지한 우리들을 저주하고 원망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느 때 어떻게 왜 무슨 짓을 해 버릴 줄 모르는 우리는 이성(理性)이 아닌 무지막지한 머리 검은 짐승이기 때문입니다.
임이시여! 임께서는 모두에게 눈물을 허락하시고 장례를 허락하시고 우리에게만은 눈물도 장례도 상복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자연에게는 하얀 상복으로 장례를 치르게 하시면서 우리에게는 냉정하셨습니다.
마지막까지 표백되어 희다 못해 푸르른 당목(唐木)자락 또 한 번의 단호한 표백은 너무나 희디희어 가까이 하기가 두려웠습니다.
나목 하나하나 가지 끝까지 하얀 눈꽃을 입으라 허락하시고 겨우내 문밖에서 서성이는 매화에 까지 가노라. 아쉬운 손짓 보내시고 떠나시면서도, 얼마나 못미더웠으면 끝내 우리들에게는 자취마저 지우라 지우라 봄비를 보내시어 인색하셨습니다.
임이시여! 임께서는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눈이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항상 여여히 앞으로 가셨습니다. 깊은 물, 높은 산, 거친 바다도 깊게 참으셨고 높게 걸으셨고 아프게 고뇌하셨습니다. 몸은 맑고 향기로운 세상 속으로 펜은 탁한 강물의 정수기로 말씀은 욕망과 고해의 시침(施鍼)으로 고뇌하셨습니다. 가난하기로는 송곳 꽂을 땅 한 평 없으셨고 넉넉하기로는 고천암 너른 들녘 말고도 더 너른 들녘의 대지주셨습니다.
세상을 맑게 하는 정수기, 먼지를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 말들의 악취를 정화시키는 공기청정기요 방향제였습니다.
분별심을 무소유로 털어내게 하셨고 적적요요(寂寂寥寥)가 무소유요 무소유가 본자연(本自然)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옆에 있을 때는 몰랐으나 없어지면 귀중한 것을 알게 되는 고유성의 중요함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영혼이 빠져나가버린 육신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인데 영혼이 썩어있는 육신의 쓰레기를 끌고 다니는 부끄러움을 알게 하셨습니다.
임이시여! 임께서는 종교요 신앙이셨습니다. 임이시여! 임께서는 종교요 신앙이십니다.
판매되지 않는 비매의 종교이며 신앙이십니다. 이제 임을 보낸 마음들은 무엇을 거울로 등불로 삼아야 합니까?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겠습니까?
방향 감각을 잃어버려 갈팡질팡 헤매는 마음들은 어디로 가서 무엇으로 거울을 삼고 등불을 삼아야 합니까?
임이시여!
생전에도 무소유에 무소유까지 털어내셨습니다. 털어낸 무소유까지 방하착하시더니 그 자취마저 다비장마저 봄비 같지 않은 봄비로 깨끗이 씻어내어 버리셨으니 어디에서 오셨다 어디로 가셨습니다. 오고감 없이 그곳에서 그곳으로 있으십니까? 아니면 다시 해남 풋나락으로 오셔서 해남 풋나락이 농부의 손에 쓰러지는 날 또 다시 그 푸르른 절명시를 쓰시렵니까? 그러시면 편히 쉬시다 다시 또 오셔서 풋나락의 맑고 향기로운 냄새로 우리 해남부터 맑고 향기롭게 하소서. 편히 쉬소서.
산하 대지가 현진광(現眞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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