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 내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낸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김준태 시인. 1948년 해남에서 출생, 조선대학교 독어독문과를 졸업했다. 1969년 전남매일 신춘문예에 등단해 전라남도 문화상을 수상했고 5.18 기념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1998 조선대학교 초빙교수이다.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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