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예나가 백혈병으로 아팠던 날을 기억하는데, 애 엄마와 어머니까지 아프다는 소식에 가슴이 아팠네. 정말 가슴이 아프다는 말 외에 표현할 말이 없어. 같은 북평 땅에 살면서도 후배 너를 만날 날은 별로 없지만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파.
시골 녀석들이 다 그랬듯 들녘에서 그리고 바다에서 온갖가지 장을 부리며 자란 북평 촌놈들. 그래도 우리에겐 꿈이 있었어. 어릴 적 꿈을 얼마나 이루고 살겠는가마는 그래도 우린 지금껏 북평을 품고 사는 촌놈이잖아. 촌놈의 무기가 무엇인줄 아는가. 끈기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놓을 수 없는 끈기,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자 또 다른 희망이지. 희망이 있으면 기적도 일어나.
지난해 말 원인미상의 병으로 전남대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적이 있어. 그때 난 의식이 없었어. 혹 내가 무의식중에라도 움직일까봐 의사들은 나를 꽁꽁 침대에 묶어놨다고 하더군. 그리고 가망이 없다고 가족들에게 장례절차를 밞으라는 말을 했고. 그 말을 들은 아내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며 모든 방법을 강구해 달라고 애원했다고 해. 의식불명 식물인간으로 지내던 내가 그것도 단 10일 만에 깨어났어. 그리고 깨어난지 20일 만에 퇴원을 했어. 병원측에서는 기적이라고 표현하더군. 고향에 돌아오니 내가 모두 죽을 것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었어. 그런데 난 살아났어. 그 기적은 우리 가족에서 나왔다고 보네.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가족이 나에게 무언중 희망을 준 것이지. 후배, 난 기적을 믿네, 아니 희망이 있는 자에겐 기적은 반드시 오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이 아프네. 후배가 담당해야 할 삶의 무게. 내려놓고 싶을 때도 있겠지, 허공을 향해 외치고 싶고 주먹을 휘두르고도 싶겠지. 그러나 이런 말도 있잖아. 조물주는 우리가 짊어질 만큼만 고통을 준다는 것. 후배 자네에겐 고통을 이겨낼 힘이 더 있는가라고. 그 말이 맞는 것 같네. 자네는 삶을 포기하는 법이 없잖아. 희망도 잃지 않고 당당히 살고 있잖는가. 후배가 안고 있는 고통보다 지금의 자네 모습이 더 숭고하네.
오 헨리가 쓴 마지막 잎새가 생각나네. 폐렴에 걸려 투병 중이던 존즈는 창밖의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는 날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이에 화가 베어만 노인은 그녀를 위해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던 날 직접 마지막 잎새를 그려 그녀에게 영원한 삶의 희망을 주었어. 후배 자네는 마지막 잎새야. 딸 아이에게도, 아내에게도 마지막 잎새는 필요해. 마지막 잎새에 담긴 건 사랑이지. 표현하지 않지만 자네에게 응원하는 이들이 많다네.
우린 북평 촌놈들이야. 끈기가 있는 바다 촌놈. 우리 잊지 마세, 우리에게 무기는 끈기, 포기하지 않는 삶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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