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찬솔(해남고1)



흔히 5.18이라고 하면 광주만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광주를 제외하고 해남과 순천, 나주 그리고 목포에서도 5.18이 있었다. 이러한 지역에서도 5.18이 있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는 최근에서야 5.18의 진상이 규명되었고, 광주지역의 항쟁에 묻혀버린 탓도 있다.
해남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이번에 공부를 하게 되면서 해남에도 5.18이 있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해남의 5.18은 광주에서 시위차량이 내려온 80년 5월 21일부터 23일까지 사흘간 진행되었다. 21일 오후, 광주에서 내려온 차량을 따라 약 500여명이 지원군으로 나섰고, 당시 시위대는 평화적 시위를 약속하고 ‘김대중 석방’, ‘전두환 퇴진’, ‘계엄령 해제’ 등을 구호로 내걸고 시위를 전개하였다.
다음날인 22일, 시위대는 경찰서에서 무기를 획득했으나, 무기를 군부대에 반납함으로써 평화시위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쟁의 마지막 날인 23일 새벽 해남읍 안동리 군부대 앞 국도상에서 시위버스 1대가 군의 총격으로 전복되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같은 시각 우슬재에서도 군인들의 무차별 사격으로 무고한 해남군민 1명이 죽고, 2명은 중상을 입었다.
해남의 항쟁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향토사단의 발포에 의한 사망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진실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왜곡되어 있다는 점이다.
당시 부상자인 배상선 씨와 송대오 씨의 증언에 따르면 향토사단에 의한 사망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부상자인 김덕수 씨의 경우 88년 청문회가 열릴 당시 사실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신병자로 몰렸다.
이 같은 왜곡에는 정치적인 기류가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정치인들이 정치적인 면을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서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심정을 이해해 주었으면 싶다.
그들이 역지사지의 자세로 생각해본다면, 이런 왜곡은 절대로 용납되어 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들이 역사를 진실 그대로 전하지 않는 것은 5.18 해남민중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정신을 짓밟고 기만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실에 의거한 객관적인 역사 규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픈 역사, 괴로운 역사인 5.18을 알아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위로하기 위함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이러한 역사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5.18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널리 알려서 모든 이에게 귀감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5.18 해남민중항쟁에 대해 알아가면서, 우리 고장 해남이 상당히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매우 안타까웠다.
지금은 내 그릇이 작아 이 상처를 감싸 줄 수 없겠지만, 나중에 성인이 돼 내 그릇을 키운다면 충분히 보듬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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