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천(해남동초등 교사)


며칠 째 궂은 날씨가 귀찮다. 오늘도 오락가락하기를 반복하는 비로 인해 종일 집안에 갇혔다.
아내는 모임에 나가고 홀로 있다 보니 따분하다.
적적함에 해남공원이라도 몇 바퀴 돌고 싶어 집을 나섰다. 작은 빗방울이 내리고 있었지만 옷이 젖을 정도는 아니라서 우산도 없이.
평상시 북적거리던 공원은 텅 비어있다. 오늘은 내가 공원 주인 같다. 비 맞은 나무는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버릇처럼 오늘도 귀엔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공원을 적어도 다섯 바퀴 이상은 돌아야 겨우 2km가 될까 말까 한데 그 전에 비가 올 것 같아 마음은 바쁘다.
차츰 빗방울이 굵어진다. 그래도 ‘한번 나선 길 조금 더 돌아보자.’ 라는 마음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그럴수록 빗방울은 얼굴에 더 세게 부딪히고 신발 뒷굽에서 튕겨 나온 물방울은 바짓가랑이를 적신다.
공원을 네 바퀴쯤 돌았을까?
오십 대 초반 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우산을 쓰고 공원에 들어선다. 넓은 공원에 이제는 두 사람이 걷는다.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지고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젠 더 돌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공원을 나서는데 그 분 역시 공원을 나서며 말을 건넨다.
‘우산 같이 쓰시죠.’
‘아니 괜찮습니다.’
그 분이 내 머리 위로 우산을 높이 들었다. 혼자 쓸 우산을 함께 쓰고 걷다보니 두 사람이 함께 비를 맞는다.
‘해남 분이세요?’
‘여기 주공에서 삽니다.’
그 분과 우산을 함께 쓴 거리는 불과 30여 미터, 하지만 가슴엔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사람 냄새가 밀려오고  따스함이 느껴진다.
‘고맙습니다.’
주공아파트 앞에서 인사를 나누며 그 분을 쳐다보았다. 키는 나보다 약간 크고 얼굴은 가늘고 평안해 보였다.
삭막한 세상!
모르는 사람과 우산을 나누어 써본지가 얼마 만이런가.
더 굵어진 비를 맞으며 돌아오는 길.
비는 맞을 대로 다 맞았지만 잠깐 동안 우산을 씌어준 그 분의 따스함이 아직도 가슴에 흐른다.
‘따스한 사람이란 비가 올 때 우산을 함께 나누어 쓸 수 있는 사람.’
‘더 따스한 사람이란 우산이 없을 때 함께 비를 맞을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많으면 따스한 세상 되겠지.
해남공원 짧은 길을 돌며 이야기(story)를 만들었다.
인생은 날마다 크고 작은 이야기의 연결인 것. 그 이야기들이 매일 매일 따스하게 흘렀으면 좋겠다.
도덕성이 허물어지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세상에서 사람 냄새가 그립고, 변해도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을 보며 마음이 아파오곤 했는데, 오늘 우산을 나누어 쓰며 같이 비를 맞아 준 그 분의 따스한 마음이 너무 너무 훈훈하고 감사하다.
비오는 날, 우산을 나누어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어려운 날 따스한 가슴  나눌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글을 정리하며 우산을 함께 나눈 주공아파트 사시는 그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잠깐 동안이나마 따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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