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맺는 강아지풀 허리 꺾는 초가을
우리는 땅끝에 갔다.
전라남도 해남군 송호리를 지나
방파제 물결 희게 자지러지는 곳
마감 날짜 한 달이 지나도록 등록금을 못 낸,
아버지 실직으로 아이 엠 에프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을 데리고 땅끝에 갔다.
입대와 사랑과 취직 문제
아무 것도 확실한 게 없어서 기가 죽어 있는, 
학생들과 땅끝에 가서 일박하고 왔다.
민박집 평상에 내려온 별들은
목이 쉰 노래에 실려 하늘로 되돌아가고
집스러운 젊음과 망설이는 연애와
오래 다듬은 가난한 꿈도 별을 따라 하늘에 얹어 두었다.
우리가 딛는 땅 어딘들 끝이 아니었으랴.
발 밑에 무너지는 모래흙 어딘들 벼랑 아니었으랴만
하필 왜 우리는 땅끝에 갔는지.
이 시대의 절정, 목숨의 끝자락을 딛고
땅끝은 바다의 끝, 절망하지 마라.
구름 아래 아슬한 점으로 찍힌 저
10년 후, 그리고 20년 후
하마터면 그 언약을 모르고 말 뻔했다.



이향아 시인은 1938 충남 서천 출생으로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꽃들은 진저리를 친다』등 16권을 냈다. 경희문학상, 윤동주문학상, 한국문학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고 현재 호남대 명예교수, 한국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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