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황사까지는 아직 멀다 마음은 저 산 너머로만 가 닿는데
이제 나아갈 길은 없구나
밤바다가 낯선 발자국에 자꾸 몸을 뒤집는다
여기까지라니 먼저 밀려온 물결이 땅끝에 이를 때마다
부르지 않은 지난 일들이 나지막한 이름을 부른다


봄밤이 깊다 달마산 너머
열나흘 지나 보름 달빛이 능선을 향해 오를수록
산은 한편 눕고 혹은 일어나기를 거듭한다.
잊었다는 듯이 잊지 않았다는 듯이


그래 때가 되면 이윽고 가야지
꽃숭어리째 붉은 동백이 긴 봄밤을 끝내 참을 수 없다는 듯
땅바닥에 뚝뚝 목을 내놓는다.


미황사까지가 멀다
그때 대웅전에 들며 나는 왜 그 말을 떠올렸을까
미황사를 등뒤로 발길을 떼어놓는다
내게 있어 아득히 잡히지 않는 먼길을 떠올린다
결국 알 수 없는 그곳까지가 멀다



박남준 시인은 1957년 전남 영광 출신으로 1984년 시「할메는 꽃신 신고 사랑노래 부르다가」로 데뷔했고 2011년 제13회 천상병 시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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