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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물감자 전락
해남읍이 한때 큰 고을이 될 수 있었답니다. 옥천면 다산마을과 팔산, 이일시에도 커다란 도시가 들어서려고 했답니다.
우슬재와 아침재 연동 앞 호산이 석자세치씩 깎이지 않았다면 해남은 권세 등등한 고을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란 이야기도 전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질 못했습니다. 그 사연 한 번 들어볼까요.
아주 먼 옛날, 지구가 생성되는 과정 때 이야기입니다. 지구 여기저기에 산이 생겨나고 바다가 생겨날 때 해남읍 들녘에 남곽산과 대창뫼도 불쑥 솟아났습니다. 해남읍을 지나던 장수의 눈에 그 산들이 들어옵니다. 장수가 보기에 그 산들이 있는 한 해남읍은 커다란 도읍지가 되기에 어려울 것이란 판단이 들었습니다. 아마 장수는 해남읍을 도읍지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장수는 해남 터를 고르기 시작합니다. 작은 구릉을 먼저 정리한 후 남곽산을 바라보니 바다를 막기에 딱 알맞은 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에도 산이 하나 있었습니다. 대창뫼입니다. 장수는 바삐 대창뫼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함을 느끼고 산을 힘껏 듭니다. 장수가 낑낑대며 산을 옮기고 있을 때, 마침 만삭이 된 여인이 그 옆을 지나게 됩니다. 여인의 발걸음을 보니 매우 바쁩니다. 갈 길은 먼데 해가 저물어가니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런데 바삐 걷는 여인 앞으로 급히 산이 움직입니다. 깜짝 놀란 여인은‘내가 헛것을 봤나’하며 눈을 비비고 다시 산을 봅니다. 사실입니다. 산이 스스로 움직이며 어디론가 갑니다.‘무슨 조화다냐’놀란 여인은“워매, 산이 움직여야”라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합니다. 여인의 외침과 동시에 산은 그 자리에 우뚝 서고 말았습니다.
읍 용정리를 가로막은 대창뫼만 없었다면 해남읍은 큰 도읍지가 되었을 것이랍니다. 만삭이 된 여인의 외침만 없었다면 대창뫼는 무사히 옮겨졌을 것이라며 사람들은 한탄했습니다. 여편네들은 항상 입조심 해야 한다는 심한 말까지 하면서요.
한때 옥천 다산마을과 팔산, 이일시도 큰 도시가 될 수 있었답니다. 고려 때의 일입니다. 다산마을에 살고 있던 만삭이 된 여인이 있었습니다. 새벽녘이 되자 용변이 급했던 여인은 밖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마당에 있던 변소에서 일을 마친 여인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새벽녘에 웬 소리일까 궁금증이 동한 여인은 동네 어귀로 나와 귀를 기울입니다. 놀랍게도 그 소리는 분명 상여소리였습니다. 새벽에 들리는 상여소리, 몸이 오싹합니다. 때마침 희미하게나마 먼동이 터옵니다. 여인의 눈에 만대산에서 무엇이 움직이는 것이 보입니다. 산 정상에서 상여가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가슴이 철렁한 여인은“워매! 산에서 상여가 내려온다!”라고 외치고 또 외칩니다. 여인의 외침소리에 놀란 동네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옵니다. 여인이 악을 쓰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만대산 중턱에 커다란 바위가 서 있었습니다. 전에 없었던 바위였지요.
이를 본 동네 최고 어른이 아깝다고 한탄을 합니다. 그 상여가 내려와 안착한 곳에 커다란 도시가 들어설 수 있었는데 만삭이 된 여인이 먼저 발견했기 때문에 부정을 타 산 중턱에서 그만 바위로 변해버렸다는 것이지요. 옛 이야기기 중에는 임신한 여성에 대해 왜 그리 부정적인 내용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여성이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은 정말로 축복받고 사랑받아야 할 일인데 옛 이야기 속에서는 그렇질 못합니다. 요즘에도 이런다면 난리가 나겠지요.
아침재와 우슬재 이야기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해남은 정말로 기세등등한 고을이었다고 합니다. 어찌나 토호세력들의 입김이 세던지 이곳에 부임해온 현감들은 이들의 눈치 보기에 바빴다고 하니까요. 그런데다 마산면에 살고 있는 토호세력에게 아침마다 재를 넘어 문안인사를 드려야 했다고 하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오죽했으면 현감들의 발길로 다져진 재 이름을 아침재라 불렀겠습니까. 이러한 해남고을에 김서구라는 현감이 부임해 옵니다. 물렁한 현감이 아니었지요. 부임해 오기 전부터 해남상황을 누누이 들었을 김 현감은 해남 뒷산인 금강산을 올라가 봅니다. 해남지형을 살피기 위해서지요. 그리고 해남이 텃세가 센 이유를 알게 됩니다. 우슬재와 아침재, 연동 앞 호산의 높이가 문제였지요. 김 현감은 다음날 당장 권속들을 시켜 우슬재와 아침재, 호산의 높이를 석자세치씩 깎아 내리는 대공사를 단행합니다. 공사가 완료된 후 거짓말같이 해남사람들의 텃세가 하루아침에 누그려졌다고 합니다. 아니 누그러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물감자 풋나락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사물이나 어떤 상징물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길 좋아합니다. 그리고 무언가 할 수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많이 남깁니다. 아마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였겠지요. 어찌되었건 해남이 클 수 있었는데 특정한 일 때문에 되지 못했다는 이 같은 아쉬운 이야기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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