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그림자가 길어졌다. 고추잠자리의 꼬리가 붉게 물들었다.  피부를 스쳐가는 바람에 찬 기운이 실렸다. 가을이다.
우리 반 아이들도 1학년의 가을을 맞았다.  몇 개월 전 입학식 때 아직 유치원생 티를 벗지 못한 여린 새싹 같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 아이들에게 희망의 아이콘 하나씩을 달아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함께 생활해온 지 7개월, 1학년의 가을에 우리 아이들을 찬찬히 바라본다.  
우리 아이들도 가을 열매처럼 많이 여물었다. 아이들의 눈빛도 생각도 행동도 바뀌었다. 공부시간엔 아이들의 눈에서 섬광이 번쩍거림을 본다. 자신감이 생겨  ‘저요!’ 라고 소리 지르는 아이들을 본다. 한번만 발표를 더하고 싶다고 발을 구르는 의욕이 넘치는 아이들을 본다. 아침이면 조용히 책을 읽는 아이들을 본다.
교육을 통해 아이들은 당연히 성장하고 변해야만 한다.  이렇게 성장하고 변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담임인 나의 거울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이런 생각을 한다.
‘교사도 브랜드(brand)다.’
요즘 세태가 그렇지만 우리 반 아이들의 상당수가 이름 있는  브랜드를  가지고 다닌다. 야무진 규민이의 책가방은 ‘필라’ 제품이다. 몇 아이들은 해남에 없는 브랜드를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면 아마 부모님들이 광주나 목포에서 마음에 드는 브랜드 제품을 사다주시는 모양이다. 부모님들이 유명 브랜드를 사주시는 이유야 여러 가지이겠지만 일반 제품과는 조금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교사를 브랜드(brand)라고 말한다면 교사들 입장에선 서운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철부지로만 보이는 아이들의 가슴에도 담임에 대한 ‘무엇’은 존재할 것이며  학부모의 가슴엔 교사가 분명 어떤 브랜드(brand)로 남아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도 두 아이를 키워내면서 방황하던 우리 아이를 일 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정상궤도에 올려주신 조금은 남다른 브랜드(brand) 선생님들을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다.
지난 28일, 금년 들어 두 번째 학부모 공개수업을 했다. 우리 반의 경우 아이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매일 동영상으로 학급 카페에 공개해 왔고 우리 반 학부모님들과 거리감을 두지 않고 아이들의 성장을 위한 동역자라는 편한 마음으로 살았기에 공개수업이라고 부담스러울 것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지난 6월의 공개수업에서 보여드렸던 아이들의 모습과 이 가을이 오기까지 많이도 성장한 아이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공개수업은 아이들의 열기로 가득했고 눈은 번쩍거렸다. 아이들의 의욕에 넘치는 소리는 야무졌고 수업은 재미있었다.
조금은 긴장해야할 수업시간이 오히려 행복했다.  아이들이 고마웠다.
비록 한 시간의 공개수업이지만 수업은 조작될 수 없는 법이다, 아이들은 평소에 훈련된 모습 그대로, 평소에 공부하던 모습 그대로를 투영해 내기 때문이다.
학부모님들이 고마웠다. 담임이 힘이 들 때 응원해 주셨으며 담임의 교육의지를 뒷받침해 주셨기 때문이다.
공개수업이 끝나고 학부모님들이 돌아간 시간, ‘참 잘했어요.’ 스티커 2장씩을 받고 기분이 좋아 야생마처럼 운동장을 달리는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조금은 행복한 마음으로 나는 어떤 브랜드인가를 스스로 돌아본다.  교사도 브랜드다.
이건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고 교사인 나의 자존감이다. 교사로 살아가야할 남은 시간도 좋은 교사여야 한다는 존재감으로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지켜 나갈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께 기억되는 좋은 브랜드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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