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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길록(전 새정치국민회의 종합민원실장)
1979년 저격당한 박정희대통령의 사인규명을 하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1980년 5‧17 비상계엄을 확대하고 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7년 후 전 대통령은 쿠데타 동기인 노태우 씨에게 민정당 대통령후보 공천을 주었다.
당시 동교동계 좌장격인 이중재 민권회장은 공․사석에서 양 김씨가 단일화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며 전두환 노태우씨와 상극인 김대중씨보다 김영삼씨로 단일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총칼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씨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선 김대중 총재에게 절대로 순순히 정권을 넘겨주지 않을 것이며 설령 김대중씨가 정권을 쟁취한다고 하더라도 친위쿠데타를 또 일으켜 더 큰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따라서 김영삼 총재에게 후보를 양보하면 백범 김구선생 다음가는 민족의 지도자가 될 것이며 지역감정이 해소되고 5공 청산을 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한편으로는 김영삼 총재에게 국무위원 임명권 할애, 국회의원 공천권 양보를 제의하자 흔쾌히 승낙하여 양 김의 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동교동계 일각에서 4자 필승론이 대두됐다. 4자 필승론이란 노태우, 김영삼 후보가 경상도의 표를 양분시킬 것이고 충청도 표는 김종필씨가 가져갈 것이기 때문에 김대중 후보가 호남, 제주, 수도권과 경상도에 거주하는 호남 표를 가져오면 김대중씨가 여유 있게 당선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결국 양 김의 단일화는 이루어지지 못했고 투표 결과 노태우 828만표, 김영삼 634만표, 김대중 611만표, 김종필 18만표를 득표함으로써 양 김이 얻은 1245만표의 약 2/3인 밖에 안 되는 828만표를 얻은 노태우 씨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양 김의 단일화 실패로 지역감정은 더욱 심화됐고 민주화세력은 양분되었다. 또 노태우 씨가 5년 간 집권하게 됨으로써 5공 청산이 무산됐다.
물론 김영삼씨가 3당 합당이라는 상상도 못할 야합으로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양 김의 단일화 무산이 남긴 상처는 너무도 컸다.
지금은 이명박 정권이 강행한 4대강 공사와 측근비리, 지역차별화, 남북의 대치와 경색의 심화로 정권교체에 대한 여망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군사정부와 5공 청산이라는 과제를 안았던 지난 시기와 지금의 시기는 비슷하다.
따라서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의 단일화 합의는 역사적 소명이자 민주화세력들의 열망이다.
역사는 잊혀지지 않고 수레바퀴처럼 돌고 돈다. 유신정권의 부활을 막고 과거사를 청산하며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하여 한반도 평화와 복지경제를 이룩하기 위해 단일화에 합의한 두 후보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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