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며칠 후면 청와대의 다음 주인이 가려질 것이다. 그런데도 주변은 너무 조용하기만 하다. 이때쯤이면 선거 이야기가 화두가 될 만도 한데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직장에서나 선거 이야기는 거의 없다.
분명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다. 나랏일을 하겠노라고 나선 후보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리며 저울질하다가 자리를 옮겨 지지 선언을 하는 이들을 보면서 내뱉는 이야기들은 몇 번 들어본 것 같다.
선거에 대한 무관심은 거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군데군데 선거 벽보가 붙어있는데 아무도 그 벽보 앞에 서서 벽보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이가 없다.  차가운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의지할 곳 없이 붙어있는 그들의 얼굴이 안쓰럽다. 사진은 웃고 있는 데 사람들은 말이 없다.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네 아들 행정고시 합격’ 이런 플래카드를 한번쯤 더 쳐다보고 지나가는 것 같다.
어렸을 적, 마을 양지에 선거 벽보가 붙은 날이면 촌로(村老)〕들은 벽보 앞에 모여 설전을 펼치곤 했다.
“저 사람 생긴 것 좀 봐. 야무지게 생겼구만!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제.” “뭔 소리여 그 사람을 찍으면 안된당께” 물론 입심이 센 사람이 말싸움에선 이기곤 했지만 선거 이야기는 어디서나 ‘꺼리’였다. 밤이면 아무 근거도 없는, 귀로 동냥해 온 후보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 놓으며 사랑방은 익어가곤 했었다. 또, 선거 날이 되면 이장의 방송에 따라 부랴부랴 인장과 주민등록증을 챙겨 투표장으로 가곤 했었고 투표가 끝난 후에도 누구를 찍었는지를 확인하며 말씨름을 하곤 했는데…. 그건 이제 내 기억의 저편에 남겨져 있는 ‘노스탤지어’ 일 뿐이다.
선거 이야기는 더 이상 ‘꺼리’가 아닌 것 같다. 국민의 수준은 상승했는데 정치 수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고 국민의 참정권 행사이며 권리라고 아무리 외쳐댄다 한들 과거와 조금도 변하지 않은 네거티브 선거전과 어느 쪽이 더 무거울지 저울질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이전의 모습 그대로를 다시 보는 것 같다. 오늘도 후보자들은 무지개 같은 약속을 해대며 포퓰리즘에 매달리고 있다. 무지개 약속과 포퓰리즘은 현재를 위해 미래를 희생시키고 만다.  몇 년 전에도 또 그 이전에도 저와 동일한 형태의 약속과 모습들을 우리는 늘 보아왔다. ‘내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겠다.’고 했었다. ‘내가 나랏일을 해야만 국민이 잘 산다.’고 온갖 미사여구를 다 동원해 지지를 부탁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 약속들은 기억에서조차 가물가물하고 사람들의 가슴속엔 늘 허탄함과 상처만 남곤 했었다. 아마도 국민들을 무관심하게 만든 것들은 뇌리에 남아있는  싸늘한 기억들일 것이다.  다행히 어제 밤 TV 여론조사에 따르면 투표장에 나가겠다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높은 편인 것을 보면서 무관심도 성숙된 비판 능력일 것이라고 자위해 본다.
‘그렇겠지. 정중동(靜中動)이겠지. 표현은 하지 않지만 마음은 움직이고 있겠지. 어찌 마음속에서조차 관심이 없을꼬. 분명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조용한 움직임 그것이 오히려 무서운 것 아니겠는가?’
선거는 사람을 만들지만 사람은 역사를 만들어 낸다. 역사는 거대한 물결과 같아 흐름을 바꾸기 힘들다. 그러기에 우리의 한 표가 사람을 뽑는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역사의식으로 전환 되었으면 좋겠다. 19일은 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날이 될 것이다.  
이제 여론조사 결과조차 알 수 없는 마지막 시간들이 얼마만큼 남아있다. 남은 기간 동안에 지금까지 무관심으로 비춰졌던 모습들이 예전보다 성숙된 조용한 움직임으로 바꿔지길 기대한다. 무관심은 상처 입은 정치에 대한 대안은 아니다. 보다 현명한 대안은 투표를 통해 역사 속의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번 대선 투표에 적극 참여하자.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한 표의 위력을 보여주자. 진실이 승리하게 하자. 국민이 가진 투표권이라는 무기의 무서움을 보여 주어야 한다.
불현듯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구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명언을 남긴 링컨이 생각난다.
국민이 주인이다. 그 주인이 투표권이라는 주인 행세를 할 날이 불과 며칠 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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