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을 삐죽거린다. 울음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내 얼굴을 한 번 보고, 건너편 엄마 얼굴을 한 번 본다. 그러더니 이내 내 품에 얼굴을 묻고 푹 안긴다. 팔을 움켜쥔 아이의 작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물컹한 아이의 살 냄새가 확 끼쳐온다. 울컥 목이 멘다. 나는 아이를 힘껏 안아주며 등을 어루만져준다. 눈물이 날 것 같다.
“한솔아, 그래 한솔아.”
이제 겨우 두 살 한솔이. 3시간 남짓 함께 지냈을 뿐인데,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 녀석이 내 품을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 어떡하면 좋아. 심하게 요동치는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미어질 것 같다. ‘녀석, 엄마 품이 그리웠구나. 그래 오늘은 내가 네 엄마다.’ 제 집으로 들여보내고 헤어져야 할 시간인데 껌처럼 붙어있는 녀석을 더 힘껏 안아주어야 했다. 녀석의 그리움과 애틋함을 고스란히 안은 채.
마흔을 넘기고 철이 들었다. 세월이 가르쳐 주었다기보다 내 딸과 아들이랑 지내는 동안 문득 찾아들었다. 개인주의라는 철옹성에 갇혀 산 나. 엄마가 되고 보니 그 성벽은 그리 단단하지 못한 모래성이었다. 다행이었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는 마음만 품고 몇 년을 살았다. 그때 만난 ‘마중물’. 펌프질할 때 필요한 한 됫박의 물처럼 세상에 씨앗 심을 때 잘 자라라고 끼얹어주는 한 됫박의 물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나와 내 아이들 가슴속에 타인을 위해 내민 손의 따뜻한 느낌이 살아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부모와 떨어져 사는 아이들의 둥지인 등대원에서 2, 3살 꼬맹이들과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손이 많이 가는 나이라 나들이가 쉽지 않다는 말에 녀석들의 나들이 도우미가 되기로 했다. 우리가 하는 건 별 것 없다. 한 달에 한 번 3시간 정도 녀석들을 데리고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곳에 데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녀석들이 가는 곳을 뒤따라 다니며 넘어지거나 다치지 않게 살피는 정도의 일이다.
정신지체가 있는 유빈이는 몸짓이 꼭 음유시인을 닮았다. 잎사귀를 손으로 꼼꼼하게 만지며 손끝으로 오롯이 그 느낌 느끼는 품새가 예사롭지 않다. 바스락거리는 비닐봉지만 있으면 한 시간도 혼자서 잘 노는 녀석이다. 녀석과는 아직 소통이 불가능하다. 다만 녀석이 다치지 않게, 넘어지지 않게 살펴주는 게 일이다.
안겨있기를 좋아하는 한솔이는 무릎을 벗어나 제 발로 걷기까지 2시간 정도 걸린다. 등을 토닥거려주면 언제고 푹 안겨 있을 기세다. 욕심이 많아 마음에 안 드는 친구 얼굴을 긁어놓는 ‘반전남’이기도 하다.
씩 웃는 웃음이 매력적인 이랑이는 첫 만남에서 제 몸만큼 큰 가방을 끌어안고 놓지를 않아 가슴 아프게 했다. 가방을 통해 어떤 애착관계가 표현되는 것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만나는 횟수가 거듭되면서 그 모습은 사라졌다.
“숨겨둔 아들 아니에요?”
회원들이 그런 농담을 할 정도로 녀석은 윤수 아빠를 쏙 빼닮았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둘이서 궁합이 잘 맞는다.
‘카레이서’라는 별명을 가진 잘 생긴 한빛이는 살인미소를 날려 우리 회원들의 애간장을 녹여놓는다. 엄마인지 이모인지 구분이 안 되는 애매한 호칭으로 우리를 부르는데 녀석은 놀이터에서도 계곡에서도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녀석이다. 하지만 녀석이 지나치게 먹는 것에 집착을 보여 받아야할 사랑을 제때 못 받아 그런 건 아닌가 싶어 속이 아려오곤 한다. 유일한 여자친구인 은솔이는 만나서부터 돌아갈 때까지 그날 만난 ‘엄마’ 무릎을 떠나지 않는 껌이다.
어쩜 고 작은 녀석들이 다 저만의 색깔과 빛깔을 가지고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제 타고난 모습으로 노는 녀석들 관찰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늘 어땠어?” 물으면 인이도 환이도 환하게 웃으며 머뭇거림 없이 대답한다. “엄마, 재미있었어요.” “유빈이는 좀 특이해요. 한솔이는 고집이 세요. 은솔이는 언제나 공주처럼 옷을 입어요.” 하며 있었던 이야기를 늘어놓느라 바쁘다. '봉사‘를 한답시고 시작했는데 녀석들에겐 ‘그냥’ 재미있는 나들이다. 귀여운 동생들과 신나게 재미있게 놀다 온다. 나보다 분명 한 수 위다.
“일을 또 만든다. 그냥 살던 대로 살자.”
처음에는 꼬맹이들과 나들이에 부정적이었던 남편까지 이제는 흔쾌히 동행을 한다. 12월에는 등대원 초등생들과 피자를 만들었는데 남편은 일정까지 바꿔가며 동참했다.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어 참 좋다.
우리는 한 달에 한번 등대원으로 ‘가족 나들이’ 간다. 마음이 뿌듯해지고 가슴이 훈훈해지는 나들이.
해남우리신문
wonmok76@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