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독서왕 선발대회 최우수상
김영화(옥천면)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세상의 모든 딸, 아들들에게 원리의식을 느끼고 살아가게끔 만드는 엄마의 이야기, 엄마의 실종에 관한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엄마를 부탁해」는 독특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 즉 주인공이 없다. 대신 엄마를 잃어버린 큰딸 지헌, 큰아들 형철, 그리고 남편이 너, 그, 당신이 되어 돌아가면서 엄마와의 오랜 기억을 회상하고 나아가서 마치 고해성사하듯이 엄마에 대해, 아내에 대해 미안해하고 고마운 마음을 드러내 보인다.
소설은 생일상을 받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던 엄마가 지하철 서울역에서 아버지를 놓치면서 잃어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될 일(아주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엄마는 아버지를 놓친 순간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고 단지 세 살적 기억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엄마는 오래전부터 심한 두통을 앓고 있었다. 우연히 엄마에게 갔다가 헛간 평상 앞에서 엄마의 고통을 목격한 큰딸이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가서 들은 사실은 엄마가 오래 전에 뇌졸중을 앓았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가진 두통의 원인을 알게 된 큰딸은 도시의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남편 역시 아내의 극심한 두통 앞에서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단지 나이가 들고 늙어가면서 생기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을 뿐이다.
엄마를 잃어버린 후 누구보다도 엄마를 찾는 일에 열심을 냈던 이는 큰딸 지헌이었다. 글을 쓰는 그녀는 세상의 모든 큰딸답게 엄마를 챙기고 걱정하지만 안타깝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과는 달리 퉁명하고 엄마를 속상하게 만들고 다투기도 한다. 중학교 입학원서를 쓰던 날, 상급학교 진학을 할 수 없었던 나를 위해 엄마는 유일한 패물이었던 왼손 중지에 끼여 있던 노란반지를 팔기도 했고 중학교를 졸업한 후 상급학교를 보내기 위해 서울로 데려간 이도 엄마였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다.
큰딸 지헌이 자랑스럽고 대견한 딸이었다면 큰아들 형철은 엄마에게 있어서 젊어서 늘 밖을 떠돌던 남편 대신이었고 집안을 건사할 희망이었다. 그렇지만 갓 스무 살 나이에 동생들까지 책임져야 했던 아들에 대한 마음은 평생 ‘미안하다. 형철아’로 이어진다.
엄마를 잃어버린 후 형철은, 결국 엄마는 그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한 게 엄마 자신이라고 여기며 살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그렇게 생각하듯이 남편 역시 아내를 잃어버린 후에야 아내가 아닌 한 사람, ‘박소녀’로서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된다.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주리라 믿었던 아내가 실종됨으로 인해 비로소 남편은 어머니로서, 아내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아내를 기억해 내고 미안해한다.
작가 신경숙은 마지막 에필로그를 통해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엄마의 부탁을 기억해 내고 장미묵주를 하나 산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앞에서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라며 글을 맺는다. 피에타 상 앞에서 독백하는 큰딸의 고백은 모든 고통과 절망에 빠진 이들을 구원할 수 있는 이는 ‘엄마’라는, 엄마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내게 깨닫게 만들어 주었다.
신경숙의 소설을 읽은 뒤 더 늦기 전에 엄마와 함께 살아야겠다며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엄마에게로 내려왔다. 딱 30년 만이었다.
엄마와 함께 지낸 올 여름에는 작은 텃밭에 고추며, 가지며, 토마토, 고구마 등을 심어서 돌보고 가꾸었다. 생전 처음 지어 본 농사여서 한없이 서툴고 엉성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엄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30여 년 전, 나의 엄마는 열 명이나 되었던 식구들을 돌보고 먹이고 살리는 일을 했다. 도무지 못하는 일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30년 만에 다시 만나 함께 살게 된 엄마는 기억력도 많이 쇠하시고, 하루에도 몇 번씩 똑같은 것을 반복해서 물으신다. 밭에 들고 나갔던 호미를 잃어버리기도 하시고 머리에 두른 수건을 찾기도 하신다. 그럴 때면 엄마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내게는 너무도 소중했던 엄마를.
그래서 더욱 미안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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