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읍 내사리 월교 마을 이순운(40)씨는 운명적인 귀농을 했다. 해남고등학교를 나와 19년 동안 서울에서 가구 만드는 일만을 해왔던 이 씨는 지난해 9월 가슴이 찢어지는 소식을 접해야 했다. 큰형님이 급성간경화 말기로 간 이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뇌사자의 간을 기다릴 여유가 없는 급한 상황이라 다른 선택의 여지없이 형에게 간을 이식해주기로 했다.
고향 내사리에서 농사를 짓던 형님은 수술 후 요양 차 제주도로 떠났지만, 남다른 형제애를 보여준 이 씨는 생업을 포기해야 했다. 수술 후 6개월은 힘든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사의 권유 때문이었다. 미처 회복이 되지 않은 몸으로 귀농을 결심한 이 씨는 자신이 세운 사업계획도 모두 포기해야 했다.
처음 귀농을 결심했을 때는 서울의 지인들과 고향 사람들 모두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모아두었던 사업 자금도 큰형님의 병원비로 모두 없애버리고 내려온 이 씨를 고향은 그래도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고향의 주민들이 힘든 일을 할 수 없는 착한 이 씨를 배려해 땅도 무료 또는 저가로 임대해 줬다.
이 씨는 갯벌 논 4000평이 있지만, 6000평 밭농사가 주 작목이다. 이 씨는 친환경농법으로 자신의 밭에 쑥, 머위, 냉이, 취나물 등의 나물류를 재배하고 무를 이용해 자연 건조에 의한 건나물 위주의 영농계획을 세우고 있다. 건나물은 인터넷과 지인을 통해 직거래 판매를 할 계획이다. 또한 부산지역 학교급식을 도맡고 있는 옆 마을 김성래씨를 통해서도 판매를 할 계획이다.
이 씨는 현재 몸이 회복이 되지 않아 힘든 일은 할 수 없지만 1년이 지나 몸이 회복되면 영농규모도 늘리고 함께 살고 있는 애인과 결혼식도 올릴 예정이다.
이 씨는 시골에서 자라기는 했지만 올 1월 귀농하면서 처음으로 농사를 지었다. 처음엔 많이 물어보기도 했지만, 혼자 해보겠다는 마음에 고추씨를 뿌렸는데, 발아가 되지 않더란다. 바닥에 열선도 깔아야 하고 상토도 써야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이 씨의 작은 비닐하우스엔 고추, 수수, 오이, 호박, 가지 등 어린모들이 자라고 있다. 책이나 컴퓨터보다 실제 체험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 같다는 이 씨는 작물을 배우기 위해 조금씩 심어보았단다.
자신이 뿌린 씨앗이 흙을 뚫고 나올 때 눈물이 나올 정도로 벅찬 감동을 느꼈다는 이 씨는 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두기도 했다.
이 씨는 귀농 후 아쉬운 점으로 귀농에 대한 홍보와 현실의 차이점을 꼽았다. 귀농을 하면 군에서 필요한 부분을 지원해줄 것으로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절차도 까다롭고 자격 제한도 많아 결국 받을 혜택이 없더라는 것이다. 이 씨는 현재 밭전업농 신청을 위해 농업기술센터에서 영농교육을 받고 있다. 형님을 살려놓고 보니 세상에 안 되는 일은 없을 것 같더라는 이 씨, 그의 농사도 안 될 것이 없을 것 같다.
박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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