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업식을 했다.
진급을 하려면 아직 10여일간의 방학기간이 남아있지만 아이들이 떠난 둥지엔 찬바람만 맴돈다. 며칠 전만해도 왁자지껄하던 교실엔 아이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과 책상마다엔 그들의 얼굴이 잔상으로 남았다. 오늘도 교실에 나와 이런 저런 정리를 하며 아직도 떠나보내지 못한 가슴은 아이들과의 사랑이야기를 추억으로 되새김해 본다.
점심시간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담임인 내가 늘 눈치를 보는 아이들이 있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담임 밥그릇을 넘어다보고 맛있게 보이는 것이라도 있는 날이면 독수리처럼 날쌔게 빼앗아 가버리고 귀챦게?하는 아이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앉고 싶어서이다.
오늘도 빈자리를 찾아 일부러 멀리 앉았는데 어느새 코앞에는 하이에나처럼 그 아이들이 코를 벌름거리며 앉아있다.
오늘 메뉴엔 탕수육이 나왔다.
“와 ! 많다. 선생님만 왜 많아?”
“나는 돈 주고 먹고 너희들은 공짜로 먹으니까 당연히 내가 더 많이 먹어야겠지.”
“돈 주고 먹어요?”
“그래”
이 아이들에겐 내가 잠깐 동안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시간이 기회다.
아이들이 기회를 잡지 못했던 모양이다.
“왜 기도를 그렇게 짧게 해?”
“내 맘이지.”
“이것(탕수육) 좀 주면 안 돼?”
“침 묻혀 버렸다.”
우리 아이들 중 몇 아이들은 담임을 마치 친구처럼 대한다.
“반말하지 말거라.”
맛있는 것만 있으면 손으로 집어 가버리는 아이들이 좌우와 전면에서 무서운 눈으로 표적을 응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예쁘기만 하다.
식사 후에도 꽁무니를 졸졸 따라 다니면서 잔소리를 해대고 머리에 기름이라도 바르고 온 날이면 금방 눈치를 채고
“촌스런 거…, 웃기지 않냐?”
“샘, 결혼했어?”
이렇게 담임을 장난감 취급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함께한 둥지를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아이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을 하나씩 달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첫 대면을 한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한 학년을 마무리했다. 10여일 후면 2학년이 될 아이들과의 일 년을 되돌아보면서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려본다. 야물어진 아이들을 생각하면 대견스럽고 남에게 자랑하고 싶고 어떤 아이들은 담임의 손길이 조금만 더 갔으면 나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교차한다.
나에겐 이 아이들이 무척이나 의미가 있다. 오랜 교직 경력에도 1학년 담임은 이 아이들이 처음이다. 그래서 어려움도 많았고 초임시절 같은 마음으로 매일을 살았다. 아이들이 해맑고 좋았다. 일 년 동안 무척이나 야물어지고 담임과 가까워졌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아이들 모두를 다음 학년으로 그대로 데려가고 싶다.
하지만 어쩌랴!
날 수를 세어보니 며칠 남지 않은 것을…
아이들의 책상을 돌아다본다. 그리고 아이들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불러본다
야무진 규민아!,  발표를 아주 잘하는 재빈아!, 새침때기 리안아, 그리고 한나야…
일 년 동안 함께 부대끼며 살아온 이 30명의 아이들이 첫 사랑의 흔적처럼 가슴에 진하게 남을 것 같다. 인생은 인연으로 인해 아름답다지. 이 아이들이 나에겐 님이었는데….
종업식 날 찍어놓은 사진을 한참이나 들여다본다. 내 반찬을 빼앗아 먹는 하이에나 같은 아이들, 하이에나들에게 반찬을 빼앗겨도 좋으니 부대끼며 일 년만 더 같이 살고 싶다. 일 년만 더 주어진다면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아이들의 장점은 살리고 부족한 부분은 매꿔내며 조금만 더 다듬어 놓고 싶다. 아마 아이들은 이런 마음을 알 리 없으니 이건 짝사랑 같은 것이겠지.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짝사랑이란다. 한 선생님이 하이에나 같은 아이들을 사랑했단다. 며칠 후면 다른 둥지를 찾아 너댓명씩 흩어질 아이들의 눈망울들이 다시 그립다. 아이들이 떠난 둥지엔 떠나보내지 못한 허전함만이 얼마간 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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