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그와는 절친(切親)이었다. 그와 친했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키가 작아 맨 앞줄 아니면 두 번째 줄 정도에 앉는다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의 정(情)이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들었을 것이다. 매일 보는 얼굴이면서도 복도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일부러 발을 곧추세워 키를 맞대보곤 했던 기억, 그리고 그 친구의 키가 나보다 조금은 작다는 그 짜릿함은 키 작은 이들만이 아는 쾌감이었을 것이리라.
지금은 서울 근교에 사는 그에게서 일 년에 한번, 많으면 두어 번 정도 전화가 걸려온다. 분위기로 보아 거의 술좌석에서 고향 친구들끼리 옛 이야기를 나누며 걸려온 전화였다.
오늘도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이, 잘 있는가? 나 ○○이 하고 술 한 잔 하다가 자네 생각이 나서 전화 걸었네.”
지금은 부천의 신문사에서 기자로, 시인으로 삶을 즐기며 살고 있다는 그 친구와 하찮은 이야기를 10여분,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옛 정이 되살아나고 오랜만에 사람 냄새를 맡는 것 같았다.
『안부를 묻고 산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이 어딘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그럴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사람 속에 묻혀 살면서 사람이 목마른 이 팍팍한 세상에 누군가 나의 안부를 물어준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가슴 떨리는 일인지. 사람에게는 사람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걸 깨우치며 산다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오늘 내가 아는 사람들의 안부를 일일이 묻고 싶다.』
그 친구는 그가 기고하는 신문의 게시판에 김시천님의 ‘안부’라는 시와 함께 시평(감상)을 이처럼 해 놓았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사람에게서 문자가 왔다. 읽어 내려가다가 보니 김시천 시인의 시를 적어 보내온 것이다.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이 어딘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라는 구절에서 멈춘 다음 머릿속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한참을 지나갔다. 다시 ‘누군가 나의 안부를 물어준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가슴 떨리는 일인지’라는 구절에서 얼마 전 다른 세상 사람이 된 사람의 이름을 떠올렸다. 아직도 지우지 못하고 있는 이름이다. 얼마나 더 지닐지는 모르겠다. 나도 누군가를 가슴 떨리게 하고 싶다.』
시평과 함께 사진으로나마 그 친구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시평의 깊음이 가슴에 밀물처럼 밀려왔다.  
여보게, 친구!
참으로 삭막한 세상에서 자네가 활짝 웃고 있는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네. 술자리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술에 취해 혼잣말 해댈 때 아직도 지워지지 않아 가슴에서 튕겨져 나오는 이름에 내가 들어있음에 또 행복했네.  
여보게, 친구!
우린 학창시절 동병상련(同病相憐)의 한(恨)을 함께 가진 사이였지.  얼굴이 잊혀질만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자네와 내가 친구인 건 ‘사람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같은 마음을 품고 살기 때문이기도 할 걸세. 사람이 그리운 세상에서 난 오늘 자네의 글에서 사람 냄새를 맡았고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람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우리들의 가슴이 이어져 있음을 발견했거든.
‘사람 속에 묻혀 살면서 사람이 목마른 이 팍팍한 세상에 누군가 나의 안부를 물어준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가슴 떨리는 일인지…. 사람에게는 사람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걸 깨우치며 산다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무런 부담 없이 안부를 물을 수 있고 같은 류(類)의 희망을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 그것도 사람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이 있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르겠네.
학창시절에 키가 작다는 한(恨)을 함께 앓았던 우리가 이제는 ‘사람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한(恨)을 가슴에 공유하고 있음은 우리가 땅끝 사람이기에 더 진할걸세. 어떤 사회에서나 조직에서나 일자리에서나 제도나 환경이 아닌 ‘사람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됨은 사람이 그립고 희망을 걸만한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느껴지는 감정인지도 모르겠네. 한편으론 아직도 사람에게 거는 희망이 있다는 간절함 때문이기도 하겠지. 우리 그런 희망을 품고 살아가세. 또 나머지 삶은 자네 말처럼 누군가를 가슴 떨리게 하며 살아가 보세.
오래 전 관중과 포숙, 염파와 인상여의 문경지교(刎頸之交)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공부했던 때가 그립네. 오래 아는 벗을 친구라 한다면 같은 지향점을 가진 사람을 지기(知己)라 한다지? 언제까지나 친구이고 지기이고 싶네.
안부를 물어 온 사람이, 그것도 같은 생각을 가진 40년지기가 있어 행복했네. 오늘은 이 행복감을 안고 각필(閣筆)해야겠네.
어이! 친구, 언제 만나면 키나 한번 맞대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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