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그 말이 곧 하나님이다’ 이 기록은 성경의 요한복음에 적힌 것이며 이를 기독교인들은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태초의 말은 인간의 언어가 아니다. 인간의 말을 짐승이 알아들을 수 없으니 만물이 공유하는 소리라고 할 수 없다. 신화가 곧 그것이다.  
태초의 말은 word, logos 라고 부르는데 ‘인간을 로고스적 동물이다’ 고 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것으로 유명하다. 즉 태초의 말이 인간언어로 시작한다는 것은 인간중심적 사고가 깔려있다. 로고스를 이성(理性)이라고 번역하는데 선천적 질서의 원리를 갖는 단어 개념으로 해석한다. 이처럼 출발 전제의 오류의 틀에 가두어 놓고 전개하는 것이 서양의 철학 사상이다.
말에 뒤이어 글, 문자가 생겨난다. 대략 BC 5000년 시기에 이집트, 그리스, 인도, 중국 등에서 생겨난 사실을 역사학자들은 밝히고 있다.
중국문자 기원은 상대갑골문에서 시작하는데 그 발상은 바다의 영물 거북이의 등짝에 실린 것이라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왕조는 그에 복종하는 제후국가에 강과 바다에 사는 거북이를 공물로 바치게 한다.
거북이를 신하들과 즐겨 먹으며 왕권의 권위와 위엄을 과시했다. 거북을 제물로 삼아 제사 드리고 등껍질을 벗겨 점을 쳤는데 점을 치는 글자 표시가 갑골문이며 주와 춘추시대로 넘어가서 발전한 것이 고대 한문이다. 그런데 상왕조의 통치 영역은 황하의 중류 하북성 일대라는 점이다. 이를 벗어난 이민족, 저들 말로 오랑캐 민족은 말과 문자가 없었다는 것인가?
중국인 관자가 말하는 고조선은 대략 B.C 2000~3000년 경에 생긴 청동기 문화로 중국과 다른 고고학적 유물을 가지고 있다. 청동기 시대에 문물제도를 갖추고 소통수단인 문자가 없이 나라를 유지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다만 이를 실증하는 유물이 없으므로 중국인이 표기하는 고조선이라는 국호를 빌려쓸 뿐이다.
진시왕이 문자를 통일하기 전에도 초나라, 제나라는 저들의 문자를 가지고 있었다 한다.
중국인은 한자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천자문을 창안한다. 그 천자문도 2종류 초기 것은 3세기, 현재의 천자문은 6세기 경에 보급된 것으로 본다.
한국에는 고조선, 삼한시대가 있는데 한자를 사용하기 이전에 생성된 청동국가이다. 중국말과 한국어는 문법체계의 어순, 조사의 배열이 다르고 한자만으로 미묘한 감정 소통을 할 수 없다. 무엇보다 먼저 생겨난 말을 한자로 표기할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저들마다 언어가 다르고 고유한 신화며 역사를 기록한 문헌을 남기었는데, 고려의 김부식이 이를 모두 수거한 후 자신의 ‘삼국사기’만 남기고 모두 불태워버린다. 그래서 삼국사는 김부식의 관점에서 요약 정리한 역사서에 불과하다. 조선시대의 정인지는 고려사 문헌을 통독하고 이를 소각하고 ‘고려사 절요’ 라는 사대주의 관점의 역사서만 남긴다. 신채호가 통탄한대로 역적은 김부식만 아니라 정인지도 마찬가지이다.
고대 영산강왕국은 6세기 초까지 백제에 넘어가기 전까지 독자적으로 활동한 국가인데 국호조차 모르는 수수께끼에 묻혀있다. 3세기 무렵 왕인박사가 처음으로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영암 다대포를 출항해 일본인에게 한자를 가르친다는 고사는 잘 아는 사실이다. 왕인은 일본어와 영산왕국 언어 2개를 통탈해야한다. 그렇다면 왕인은 일본어를 미리 알고 있어야한다. 통역을 대동한들 마찬가지다. 만약 왜국이 한반도 내륙에 있었고 왜어와 백제어가 상통하는 말을 사용하였다면 의문점이 풀린다. 역사 연구자는 이 시점에서 입을 다문다.  
세종의 한글 창제는 백성이 배우기 쉬운, 가장 과학적이고 천‧지‧인 합일 사상을 반영한 글자라고 한다. 한문을 섞어야 해독되는 일본어와 다르다. 그런데 인구의 10%도 안되는 양반층의 한자 상용에 지배받는 일반 백성은 고려 400년 동안 글자 없는 까막눈으로 살았을까?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우리글의 공백기 역사이다. 우리말과 어순 배열이 같은 일본어는 7세기 무렵 형성된다.
설총의 이두식 글자는 조사를 한문으로 표기하는데 한자를 알아야 상용된다.
한자를 몰라도 우리말만 가지고 통용이 가능하다면 우리글자가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 근거를 신대문자에서 찾는 이도 있으나 연구 과제이다.
어려운 한자 나열로 지식인은 자신을 과시한다. 최남선이 작성한 기미독립선언서 ‘오등은 자에 조선의 독리국임을 선언하노라’ 로 시작되는 국정교과서에 실린 글을 해독하기 위하여 다시 한문 풀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그 당시 만세운동에 참가한 민중은 최남선의 선언서를 얼마나 해득하였을까? 지식인과 민중이 겉도는 사이, 일제강점기 시기는 일본식 한자에 찌들고 국한문 병용시대를 지나 순수한 한글만의 표기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변화의 바람이 심하다.
우리말 조선어의 개발은 북조선이 주도한다면  그래서 트랙터를 뜨락또르로 읽는다고 더 순수한 건 아니다. 한편 남한은 영어배우기에 휘말려 유치원생부터 부모의 시달림을 받는다.
숙대의 모 총장이 영어 발음의 Orange를 아뢴지로 고처 읽어야한다는 발음교정 일화는 유명하다. 사대에 찌든 지식인 모습이다. 가끔식 TV 출연한 배우가 유창한 영어발음 발성으로 시청자를 기죽이는 프로를 보면 미처 가는 새태 풍경에 기가 막힌다.  
말에는 이성과 감성을 담은 영성의 힘이 있다. 시인의 시어가 그러하다. 이를 영어로 번역 전달한다고 오는 게 아니다. 전달 받는 자의 공명, 울림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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