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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고대문명의 출현시기로부터 현재까지 1만년의 역사를 기록한다. 역사를 기준으로 선사시대와 유사시대로 구분하는데 현세인류는 선사시대 사람들을 몽매한 원시인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문명인의 편견이다.
모든 생물이 살아가는데 있어 필수 조건은 자연이 주는 에너지이다.
먼저 자기 몸을 유지하기 위해 먹을 식량의 장만이다. 두 번째는 잠자리인 휴식공간이다.
구석기인은 동굴에 살면서 공동체 삶을 살았는데 우두머리는 여성 주술사였다.
모든 생명체는 종족번식을 제일 중요하게 여겼고 이에 여성을 신으로 받드는 신화가 형성됐다. 구석기 출토 유물인, 젖가슴과 엉덩이가 큰 여신상도 이같은 신화의 반증이다.
수렵인은 이동하면서 여신상을 모셨는데 이를 ‘동산미술’이라 한다. 이들의 모듬사리 삶을 어미중심의 모권사회라 한다.
구석기인들은 동굴벽화에 먹이감의 희생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이들의 재생을 염원하는 주술행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제의식의 도덕성을 형성한다. 즉 殺身成仁을 터득한다. 살신성인을 인간에게만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물에게도 동물의 마스터, 주인이 있다는 것이 신화학자 켐벨의 주장이다.
신석기들은 돌을 다듬을 줄 알았다. 일정한 곳에 정착하며 식물을 경작해 많은 식량을 확보, 저축함으로 식구가 늘어난다.
식물의 생식과 번성을 돕는 것은 자연의 땅, 바람, 물, 해와 달, 번개라는 현상을 알게 되면서 제사대상의 범위가 넓혀지고 씨앗이 땅에 떨어져 다시 자라는 과정을 통해 재생, 부활의 순환신화를 체득한다.
곡물을 담아 올리는 제의식은 여성이 만든 질그릇을 사용하는데 어미 몸을 모방한 세발토기이다.
장자는 신농이 살던 시대에 남자는 성이 없었다고 말한다. 남자가 성을 갖는 것은 남자 씨족의 표시인데 부권사회에서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모권사회 풍습은 중국 운남성 소수민족 신화에 지금도 남아있다.
우리가 사직이라고 하는 社는 땅귀신을, 稷은 곡물귀신을 의미하며 종묘사직(宗廟社稷)의 유래는 왕권이 제사를 주도한데서 온 것이다.
그런데 국가이름이 등장하는 역사시기인 고대사회 때 부권사회로 바뀌었을까? 하는 의문이 숙제로 남는다.
신화의 역전에 대한 연구의 부진은 모권사회 설정을 부정해 인류사를 단일하게 보는 편견에서 비롯한다. 필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모권사회가 부권사회로 전환했음을 본다.
모권사회가 일처다부제일지라도 여자는 생리적 나이 때문에 10명 이상의 자식을 출산하지 못한다.
그러나 부권사회의 일부다처제는 수십, 수백명의 처첩을 상대로 수십, 수백명의 자녀를 얻을 수 있다. 이는 권력을 잡는 귀족 신분에게 가능한 일이었으며 이러한 번식 생산으로 남성의 주도권이 형성된다. 그리고 철기로 만든 보습 쟁기는 남자의 힘을 필요로 한다.
여자가 땅이라면 남자는 그 땅에 씨를 뿌린다. 시경에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고 노래는 부권사회에서 여성은 자녀양육에 전념하라는 찬가이다. 그것도 귀족 신분, 부유층 사회에서-부귀는 권력잡은 남자가 물어다준다는 점에서 계급화 되었다. 그 틈 사이에 여성대통령이 출현하는 이변이 생겨났다.
‘돌밭에 돌배 나고,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고’ 속담은 여자 남자간에 치고 받는 역할론이다. 극본작가 김수현 씨의 ‘무자식이 상팔자’ 극은 모두가 자식 낳아 결혼하는, 가정지키기의 보수적 편들기로 결말한다
부권사회의 여성 소외, 차별의 관행은 현대 기술 정보 시대에도 작용한다.
현재의 일부일처제가 여권 확보라 생각할지 모르나 성적 개방시대라 무의미하며 경제적으로 무익한 남자는 이혼 당하는 여권 실세의 풍토가 거세지고 있다.
자녀양육과 무관한 여성의 홀로서기, 실익을 쫒는 추세 속에서 어느덧 여인상은 자본주의화 돼가고 있다.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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