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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은 이를 두고 “하늘이 현조에게 명하여 내려와 상(商)을 낳았다(天命玄鳥 降而生商)”고 했다. 여기서 ‘알을 삼켜 낳았다’는 것은 한마디로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는 뜻이다. 중국 속어에 거북이 자식은 우리말의 홀어미 자식처럼 욕이다. 이를 두고 역사가들은 간적은 모계 씨족사회의 마지막 여성지도자이며, ‘설’은 부계사회의 시조라는 것이다.
한비자(韓非子)는 “아들을 낳으면 서로 축하하고. 딸을 낳으면 죽였다”고 증언했다. 성인이라는 공자(孔子)도 “여자와 소인은 길들이기 힘들다. 가까이 하면 버릇없이 굴고 멀리하면 원망하기 때문이다.”(<논어> ‘양화’)고 했다.
중국 근대문학의 루쉰은 “공자가 말한 여자 속에는 그의 어머니도 있을까”하고 비아냥댔다. 옛말에 암탉이 울면 집이 망한다는 소리는 주의 무왕이 상나라를 치면서 하는 말이었으며 암탉은 상나라 왕비 달기를 지칭한다. 주왕은 달기를 위해 주지육림(酒池肉林)을 만들어 벌거벗은 남녀들을 풀어놓았다.
또 불 위에 기름 기둥을 걸어놓고는 죄수들에게 걷게 했다. 그들이 미끄러져 떨어지는 모습을 즐긴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포락형(포烙刑)’이다. 사실 나라를 망친 장본인은 주왕 그 사람이다. 그런데도 주 무왕은 애꿎은 달기에게 책임을 물어 ‘암탉 운운’하면서 꾸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신라 선덕여왕의 시대를 일컬어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폄하했다.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비천하다. 어찌 아녀자가 안방에서 나와 정사를 처리할 수 있겠는가. 신라는 여자를 왕으로 세웠으니 참 어지러운 세상의 일이다.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男尊而女卑 豈可許 出閨房 斷國家之政事乎 新羅扶起女子 處之王位 誠亂世之事 國之不亡幸也)”(<삼국사기> ‘신라본기·선덕여왕조’).
상대등 비담(毗曇) 등은 “(선덕)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女主不能善理)”면서 반역을 일으키기도 했다.
신라 35대 경덕왕(742~765)의 아들타령은 끔찍했다. 조강지처인 왕비(삼모부인)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궁궐에서 쫓아냈다. 만월부인을 새 왕비로 들였다. 왕은 표훈스님을 불러 “제발 아들이 생기도록 천제에게 빌어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천제의 응답은 “딸은 낳을 수 있지만 아들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경덕왕은 “부디 딸을 아들로 바꿔달라”고 재차 간청한다. 그러자 천제는 표훈스님을 통해 “딸을 아들로 바꾸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고 경고한다. 왕은 “그래도 괜찮다”고 고집을 피운다. 천제는 할 수 없이 아들을 내줬다. 그 아들이 바로 혜공왕이다. 하지만 혜공왕이 즉위하자 나라에는 도둑이 들끓었다. 혜공왕은 마침내 반란군에게 살해됐다. 지나친 ‘아들타령’이 나라를 기울게 만든 것이다.
중국 역사서는 걸핏하면 역대 왕조가 망한 까닭을 ‘경국지색’의 탓이라고 돌린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는 죄다 여성 때문이었을까. ‘여인천하’가 태평성대였던 때도 꽤 있었다.
한나라 시조 유방의 부인 여태후는 고조가 죽자 어린 천자를 대신해 정권을 잡았다. 여태후의 시대는 한나라 역사를 통틀어 가장 태평한 시대로 꼽힌다.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칭찬했다. “모든 정치가 안방에서 이뤄졌지만 천하가 태평하고 안락했다. 백성들이 농삿일에 힘쓰니 의식이 나날이 풍족해졌다.”(<사기> ‘여태후본기’).
측천무후(재위 690~705)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예와 이무(吏務)에 뛰어난 신흥관리를 등용해 구 귀족층을 배척하며 중국 사상 유일한 여제로 15년간 천하를 지배했다.
이식 토지-상업자본-학식이 결합된 지배층의 기반이 과거제를 통해 확립됐다. 또 당근과 채찍으로 이민족을 다스려서 변방의 안정을 도모했다.
요즘말로 ‘암탉이 울어야 알을 먹는다’ 그만큼 여자 덕을 본다는 소리인데 여자가 자기 먹을거리를 확보하는 직장을 잡고 보면 이혼을 겁내지 않는다. 반대로 남성은 고용력 쇠퇴로 점차로 사회 진출이 어려운 세상이고 보니 무능력한 남성이 증가한다.
이혼남, 홀아비가 많은 것은 자급을 상실한 경제력이다. 상대의 선택권이 여자에게 넘어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성의 육아에 대한 권한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이같은 교육독재는 자기의 속물성을 반영하듯 자식을 치열한 출세주의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우리의 어미의 어미가 지켜온 우리말, 모국어의 혼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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