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4․19민주혁명이 일어난 달이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학생들은 항상 용감함을 보여줬다.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 독립선언, 광주 학생운동,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마산사건, 자유당 독재정권을 쓰러뜨린 4․19민주혁명 모두 학생들이 주도한 의거였다.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자유당에 대한 국민적 반감은 시위로 확대됐다. 1960년 4월18일 시작된 대학생들의 거리시위는 4월19일 서울 고교생들의 의거를 불러왔고 시민들까지 합세해 3만여 명이 서울 거리를 가득 메웠다. 그들의 주장은 무능정치, 금권정치를 없애자는 것이었다.
경찰력으로도 막을 수 없었던 시위, 오후 들어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순간에 50~60명이 쓰러졌다. 학생들의 시위는 시체와 부상자, 총성과 연막으로 수라장이 됐다. 당시 학생들이 불렀던 노래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와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였다.
경찰의 발포로 유혈참극이 벌어지자 시위는 전국으로 확대됐고 정부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4월25일 전국 127개 대학 교수단의 시위에 이어 4월26일 자유당정권이 물러남으로써 4월 민주혁명은 완수됐다. 이때 희생된 학생은 186명, 부상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그날의 회상이다.
4․19정신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민주주의를 향한 염원이었다. 그 어떤 것도 자유와 정의를 넘어설 수 없음을 4․19는 보여줬다. 우리는 4․19정신이 이 나라에 남긴 민주주의 씨앗을 맛보고 있다.
두륜산에서 솟구쳐 흐르는 맑은 물이 삼산천으로 흐르며 남으로 흘러가는 것과 같이 민주주의란 그 어떤 것으로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우리의 역사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민주역량을 키워온 과정이었다.
53년 전 서울 한복판에서 보여준 학생들의 신념과 염원은 지금도 우리 정신에 흐른다. 우리 국민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언제든지 나설 수 있는 용기와 신념이 있고, 평소에는 무력하게 보이지만 자유와 민권을 수호할 용기를 가졌다.
이 땅의 민주주의 등대엔 4․19의 넋이 늘 깃들어 있다.
그러한 점에서 오늘날의 정국을 우리는 그렇게 비관하지 않는다. 설혹 표면에 덮인 짙은 안개 속에서 갈팡질팡 갈 바를 모르고 혼미를 거듭하고 있지만 4․19정신이 우리에게 흐르는 한 탄탄한 민권복귀의 대로가 열릴 것으로 믿는다.
사회란 새로움을 향해 낡은 것을 버리는 진통의 연속이다.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다.
문화도 제반 사회도 모두 그 원칙을 벗어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몸부림치고 있는 정치에 대한 혼란스러움도 과정 중 하나이다.
샘물은 약간만 휘저어도 흐려지며, 거기에 무엇을 더 넣으면 맑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버려둬야만 맑아진다. 분열과 혼란이 있을 때 최선의 방책은 그것이 지나가도록 놔두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정치는 스스로 전취(戰取)한 자유가 아니고 주어진 자유이다. 4․19는 젊은이들이 자유를 위해 생명을 바쳤고, 그 성과물을 우린 맛보고 있다.
4월을 보내며 4․19 영혼들 앞에 머리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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