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역사, 지리서를 돌아보면 이중환의 ‘택리지’가 떠오른다. 택리지는  전국을 8도로 나눠 지역민의 특성과 산천을 간명하게 서술하나, ‘대동여지도’ 같은 지리부도는 아니다.
이중환은 호남의 특성을 ‘풍전세류’ 즉 바람 앞에 흔들거리는 버드나무라고 비유한다. 왜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버드나무 가지는 가늘고 부드럽지만 결코 바람 앞에 꺾이지 않는다는 기질의 반영일 수 있고 ‘남도의 한’과도 맥락이 통한다.
오늘의 역사 지리서라고 할 수 있는 기초자료는 각 시, 군에 비치되어 있는 시, 군지(郡誌)의 지명유래 등이 있고 해남군에도 해남군사가 있다. 그러나 기술이 허술해 외지인이 참고할 객관성이 없다. 이를 버젓이 출간하는 시, 군 문화당국의 의식이 한심하다. 지역민도 무심히 보아 넘긴다.
우선 책의 발행인이 ‘문화원’이라 돼 있어 분명 공동 집필인데 구체적인 필자 이름이 없다. 대체로 문화원은 지역 토박이 인사로 구성하는데 필자를 모른다면 혹은 알려주지 않는다면 집필의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다.
혹 그것이 현 지역민의 문화의식 수준일 수 있다. 각 군은 면, 리 단위로  세분하며 각각 이름을 붙여 구별한다.
지명의 탄생에는 역사적 유래가 있으며 지리적 산야의 특성을 반영한다. 가령 해남 남단을 ‘땅끝’이라 이름 한 유래는 너무 잘 아는 사실이다. 그 이름이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내가 사는 동네는 화원면 매월리이다. 화원은 우리말로 ‘꽃동산‘이다. 그런데 무슨 꽃이 많아서 이런 이름이 생긴 것일까 알지 못했는데 우연히 비행기를 타고 화원을 지나던 중 흰 꽃이 만발한 산을 보고 유래를 알게 됐다. 그 흰 꽃의 정체는 이른 봄에 피는 ’벗꽃‘ 이다.
내집 뜨락 건너편 산등성이에도 흰빛이 만발해 푸른 소나무 군락을 가린다. 벚꽃은 제주도를 자생지로 남녘의 동백 나무숲과 자리다툼한다. 벚꽃은 일본으로 건너가 ’사쿠라‘ 로 개명되는데 원뜻이 흰꽃이라는 속말이 숨어있다.
동네 이름에 월(月)자가 붙은 마을이 많다. 월내, 월산, 월곡, 매월 등인데 月의 원말은 지금의 달로 생각할지 모르나 단군신화의 ‘아사달’처럼 산을 의미하는 고어이다. 그리하여 산내면은 달래면, 산속 동네라는 말이다. 그런데 매월(梅月)은 매산(梅山)인데 살구나 매실나무는 없고 벚나무만 무성하니 이상하다.
조선 시조에 이화우(梨花雨) 흩날릴제 ‘혹은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등 이화는 배꽃인데 그 당시 배나무를 심어 즐겼다는 정서를 짐작하게 한다. 마을, 마, 말, 몰, 모리, 물, 고을, 골, 구리, 굴, 고, 구, 구멍 등 같은 유사발음은 원시인의 굴집, 움막이나 산속 공동체 거주지를 의미한다.
길마와 질마는 같은 뜻의 ‘흙마을’,  ‘가마리’ 의 가마는 감, 검, 고마, 곰 간 등은 한자말의 神을 의미한다. 조선 지리서 ‘동국여지승람’을 참조하여 지명유래를 연구하는 학자와 더불어 집필해야 군지가 살아난다. 그런데 군에 없는 유물을 있는 것처럼 사진을 도용하고, 지명된 장소가 동서남북 어느 시점에서 몇 미터에 위치한다는 정확도 없이 기재하는 것은 정보 자료로서 가치가 없다. 역사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사라진 곳도 많다. 그러나 복원하면 문화탐방의 구실거리도 된다. 이점 해남을 알리는 참한 개정판이 필요하다. 의미 없는 반문화적 축제에 낭비 말고 그런 돈으로 지역기반의 문화자료부터 튼튼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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